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뷔민] 사랑의 아쿠아리움

방온전 돌발본 유료공개 (상어수인x펭귄수인)

 

 

 

그 상어

 

 

 


왜 이런 날만 이렇게 날씨가 좋은 걸까. 태형은 오랜만에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 미뤄뒀던 나들이를 가기 좋는 기상 캐스터의 말을 떠올리곤 코를 훌쩍였다. 해까지 쨍쨍한 것이 피부가 갈라질 것만 같았다. 어디 해수에 몸이나 푹 담그고 싶다고 생각하는 태형은 오늘로써 벌써 열세 번의 면접에서 떨어지고 오는 길이었다.


“왜 이렇게 유능한 인재를 몰라주지.”


쇼윈도를 거울삼아 머리를 정돈하며 태형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잘생기고. 몸 건강하고. 머리도 뭐…이 정도면 좋은 편인데. 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태형은 그 답을 알고 있었으니까.


‘수인이시네요. 그것도…상어요.’


면접관들은 하나같이 태형의 종(種)을 걸고넘어졌다. 물론 바다생물들이 육지에서 오래 활동하는 것을 힘들어할 수 있다. 쉽게 지칠 수도 있고, 예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이유라기엔 예민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슈가글라이더들도 잘만 취업했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다. 태형은 다시 면접관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수인이시네요. 그것도, 상어요. 그것도, 상어! 상어인 것이 대체 뭐 어떻단 말인가? 내가 댁들을 잡아먹기라도 한 댔습니까? 그리고 나는 온순한 종이라고! 태형은 억울해졌다. 이게 다 영화 때문이다. 영화가 상어의 이미지를 다 망쳐놓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그 흉포한 애들은 백상아리인데 왜 저 같은 선량한 샌드타이거상어가 누명을 써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 온순한 상어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루빨리 상어인들이 모여 그 감독을 고소해야만 한다고 태형은 생각했다.

육지의 맹수들이야 오래전부터 함께 살며 각종 분야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자리를 잡았다지만, 육지로 올라온 지 오래되지 않은 바다생물들은 자리를 잡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물며 영화나 다큐멘터리에 공포의 대상으로 심심하면 등장하는 상어는 더더욱.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피부가 더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태형은 한껏 울상을 하고선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폰 요금은 어떡하지. 공과금은? 한숨만 푹푹 나오는 우울한 생각투성이였다.

그래도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힘이 쭉 빠진 채 기운 없이 걷던 태형의 눈에 알록달록한 전단지 하나가 들어왔다.


꿈과 희망의 물의 왕국 위드 아쿠아리움에서 함께 할 직원/아르바이트생을 구합니다!


태형은 천천히 전단지 앞으로 다가갔다. 위드 아쿠아리움이라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쿠아리움이었다. 아예 전단지를 뜯어낸 태형이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모집 : 정규직, 파트타임

모집 분야 : (정규직) 해양포유류 사육사, 어류 사육사

                    (파트타임) 매표업무, 고객 응대, 청소 등

자격 요건 : (정규직) 관련학과 전공자 혹은 관련 업무 1년 이상 경험자

                    (파트타임) 자격 요건 없음.

우대 조건 : (정규직/파트타임) 외국어 가능자.

수족관/동물원/테마파크 관련 직무 유경험자

스킨스쿠버 관련 가능자 (수중촬영 가능자 우대)

(※해양 생물 수인 완전우대!)

급여 : (정규직) 한 달 세전 2,xxx,xxx

            (파트타임) 시급 10,000원 (주휴수당 별도)


옴마, 시급이 만 원? 태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완전우대 조건까지 딱 자신을 위한 자리였다. 당장 전화를 하려던 태형이 순간 멈칫했다. 당차게 육지에서 살아보겠다고 바다를 떠나왔으면서 결국 돌아가는 게 물 속이라니. 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야, 김태형. 사나이가 뭍으로 나왔으면 정정당당하게 부딪혀야지! 아무도 정정당당하지 않다고 비판하지 않음에도 제 발 저린 태형은 아쿠아리움 구인 전단지를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



그러나 태형이 다시 전단지를 꺼내는 것에는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현실로 돌아오니 돈 나갈 곳투성이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콸콸 쏟아져 나가는 지출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태형은 자존심일랑 곱게 접어 저 깊숙한 곳에 던져버리곤 전단지 속 담당자 연락처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 네, 여보세요.

“그, 저, 전단지 보고 전화 드리는데요….”

― 면접 언제 가능하세요?

“아, 저 오늘 당장도 됩니다!”

― 그럼 오늘 오후 5시까지 오시겠어요?

“네, 5시까지 가겠습니다.”



그렇게 급하게 잡힌 면접에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켜 후다닥 준비를 마친 태형은 거대한 아쿠아리움의 앞에 서서 그 규모를 체험하는 중이었다. 국내 최대 자본이 들어간 아쿠아리움이라더니 과연 달라도 달랐다. 떡 벌어지는 입을 겨우겨우 닫은 채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면접을 보러 왔다는 말에 친절히 웃은 직원은 태형을 사무실 같은 곳으로 안내해주었다. 아직 담당자가 오지 않은 조용한 사무실 안, 태형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번에 떨어지면 정말 끝이라는 각오로 온 면접이었다.

곧 문이 열리고 담당자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태형은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남자가 괜찮다는 듯 손사래를 쳐 보이며 태형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태형은 가져온 이력서를 잽싸게 내밀었다. 남자가 안경을 고쳐 쓴 후 태형의 이력서를 살피기 시작했다.


“음…. 좋아요, 태형 씨. 파트타임으로 지원하신 거죠?”

“네, 네!”

“어디 보자. 할 줄 아는 언어가, 일본어? 따로 배우셨어요? 자격증 같은 거 있으신가?”

“아. 그, 어릴 때 살던 곳이 일본 근처였어서…. 일본어 말고는 물고기들이랑 대화할 수 있고요.”


이력서를 살피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태형을 바라봤다. 물고기랑 대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태형은 이력서에 수인임을 적지 않았음을 깨닫고 급히 말을 이었다.


“아, 그, 제가요…. 인제 그, 수인인데요…. 아, 저 장비 없어도 잠수할 수 있어요! 수중촬영도 가능, 가능할걸요?”

“수인이라 함은…. 바다 생물이십니까?”


잠시 고민하며 눈을 굴리던 태형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바다생물이긴 한데…. 제가 그 상어거든요? 근데 막 백상아리같이 무서운 애들 아니고요…. 샌드타이거상어라고…. 온순한 종이에요! 안 물어요.”


태형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무해함을 어필했다. 호오. 상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남자의 눈빛이 변했다.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뭔가 생각하는 듯하던 남자가 환한 얼굴로 태형을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보니 이번엔 어딘가 예감이 좋아 태형은 한결 긴장이 풀린 얼굴로 남자를 마주 봤다.


“마침 저희가 상어쇼를 하려고 하는데…마땅치가 않았거든요. 딱 보기에 상어답고 역동적이면서 위험하지 않은 그런 상어가 있어야 하는데….”


남자가 힐끔 태형의 눈치를 살핀다. 태형은 어딘가 불안해지는 마음에 마른 입술을 감쳐 물었다.


“딱 태형씨 종이 좋은데…. 아시다시피 워낙 유영속도가 느린 편이라서… 역동적으로 먹이를 먹고 그런 걸 보여주고 싶은데. 상어를 어디서 바로 데려올 수도 없고 해서….”

“그…. 그 말씀을 왜 하시는지….”

“훨씬 좋은 급여 조건으로 인상해드릴게요. 물속에서 일하시는 게 더 편하시지 않겠어요?”

“저보고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라고요?”

“재롱이라뇨. 상어의 위엄을 보여주는 거죠.”


싫어, 안 해! 그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남자가 급히 작성해서 보여준 급여를 본 순간 태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네, 할게요.”


꾹꾹 고개를 드는 자존심을 발로 눌러 밟으며 태형은 계약서에 사인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백수 생활도 탈출이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세요? 이 포스트를 구매하시면 아래에 이어지는 내용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텍스트5,904

댓글 1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7
[슈짐] 주차를 바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