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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제로 디그리 01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어디에도 없는 안전한 하우스 메이트! 비서에서 친구까지, 지금 바로 구매하세요!’


그런 말에 낚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민은 술에 취해 큰돈을 들여 덜컥 구매해버린 물건이 금일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받고 사무실 책상에 앉은 채 머리를 쥐어뜯어야만 했다. 옆자리 김 대리가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그런 시선을 신경 쓸 정신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리나케 주문했던 사이트에 들어가 상품 페이지를 다시 읽어보았지만, 모든 제품은 기호에 맞게 커스텀 되기 때문에 단순 변심으로 인한 환불은 안 된다는 문구만 확인사살 하듯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후우우. 이미 엉망인 머리를 더 헝클어뜨리며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내뱉은 지민은 고개를 들어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봤다. “배송중” 세 글자만이 눈에 들어와 박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후회하고 있어 봐야 뭐하겠는가. 지민은 마지막으로 한숨을 한 번 더 내쉬고 더는 후회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바쁘지 않은 시기라고는 하지만, 지민은 월급도둑 짓을 할 정도로 뻔뻔하지도 대담하지도 못했다. 애써 충동구매의 흔적을 머리에서 지우며 지민은 업무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오늘따라 시간이 왜 이렇게 쏜살같이 지나가는지 좋으면서도 싫은 퇴근 시간이 다가왔다. 평소라면 퇴근이라는 생각에 죽어가던 몸에 생기가 도는 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겠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곧 배송 기사가 방문하겠다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일에 집중하면서 애써 잊었던 사실이 상기되자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지민은 집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배송 기사와 마주쳤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후회하지 말고 알차게 사용하자!’ 그런 다짐을 한 게 불과 몇 시간 전인데 자신의 몸집만 한 상자를 배달 기사로부터 인수하고 나자 지민은 다시 한 번 몰려오는 후회와 자괴감에 현관에 주저앉아 다시 결 좋은 머리칼을 쥐어뜯어야 했다.

후우. 한숨을 쉬며 커다란 상자를 바라본 지민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어차피 요즘 가정마다 안드로이드 한 대씩은 있다고 하니까. 마음을 반쯤 비운 채로 지민은 터덜터덜 상자로 다가갔다. 단단한 포장을 뜯어내고 심호흡을 한 지민이 결심한 듯 상자를 열어젖혔다.

아.

상자를 열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지민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꼼꼼하고 세세하게 기재했던 요구사항이 모두 들어간 하얗고 단정한 얼굴이 깊은 잠이 든 듯 미동 없이 상자에 앉아 있었다. 동그랗고 도토리 같은 머리통부터 오뚝한 콧날에서 이어진 둥근 코끝과 입매까지 지민의 취향이 아닌 구석이 없었다. 기왕 사는 거 가장 좋은 옵션으로 사자는 과거의 자신이 통 크게 한 달 치의 월급에 맞먹는 돈을 결제한 결과는 애석하게도 마음에 쏙 들었다. 지민은 과거의 자신을 욕하는 것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후회를 멈춘 대신 지민은 상자에서 설명서와 보증서를 찾아 훑어보기 시작했다.


「가사용 안드로이드 HK-910」


가장 최신의 바디와 소프트웨어를 탑재했다는 설명과 기능들이 쭉 나열된 설명서를 훑어본 지민은 마지막 장에 기재되어 있는 커스텀 정보를 확인하며 상자에 기대앉아 눈을 감고 있는 안드로이드의 등 쪽으로 손을 넣었다. 스위치를 켜고 작동시키기 위함이었다. 안드로이드의 몸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람의 몸과 같은 바디에 감탄을 하며 등을 더듬었지만, 한참이 지나도 스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 어디 있다고 했는데. 지민은 살짝 얼굴을 찌푸린 채로 다시 설명서를 바라봤다. 그림으로 친절하게 나와 있는 설명서의 위치는 분명 지민이 더듬고 있는 곳 근처였는데 손끝에 걸려야 할 스위치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잘못 왔나? 지민의 눈썹이 팔자로 휘었다. 불량이어도 어떻게 전원 스위치가 없는 불량일 수가 있지? 제작 업체 연락처를 찾기 위해 고개를 든 지민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고 다음 순간 꽥 소리를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다.

지민을 놀라게 한 원인은 태연하게 크고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지민은 한순간에 거칠어진 숨을 차분하게 고르며 손안에서 구겨진 설명서를 바닥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요새는 기술력이 좋아져서 전원 스위치조차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듯했다. 안드로이드는 앉은 것도 선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춰 지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안드로이드는 출하 전 주문할 당시 기재한 이름을 소프트웨어에 입력한 후 배송된다고 했다. 지민은 커스텀 할 당시 적었던 이름을 떠올렸다. 비록 술에 취해 멍한 정신에 갑자기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정한 이름이었지만, 제법 마음에 드는 이름이었다. 자신의 안드로이드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맹한 생각을 하며 지민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안드로이드의 이름을 불렀다.


“저, 정국아…?”


지민이 커스텀한 대로 크고 순한 동그란 눈이 지민을 바라보았다. 참 맑은 눈동자라고 생각하며 지민은 제법 긴장한 채로 정국을 올려다봤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던 정국이 이내 눈꼬리를 휘어 곱게 접어가며 웃었다.


“네, 주인님!”

“주, 주인님…?”


예상치 못한 호칭에 놀란 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국이 고개를 갸웃한다. 지민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정국이 여전히 어정쩡하게 선 채로 지민을 향해 물었다.


“주인님이 아니신가요? 데이터는 일치하는데….”

“아, 아니야. 내가 그…주인은 맞는데…주인님은 아닌데….”

“주인님이 싫으신가요?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요?”


정국이 얌전히 지민의 답을 기다렸다. 으음…. 호칭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지민은 잠시 짧게 고민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뒤에 나온 답은 지민 스스로가 생각해도 제법 만족스러운 호칭이었다.


“형! 그냥 지민형이라고 불러.”

“네, 지민 형아.”


그렇게 말한 정국이 말간 얼굴로 아이같이 웃었다. 자신의 취향으로 범벅된 얼굴이 그렇게 웃는 모습에 지민은 입을 헤 벌리고 쳐다봤다. 멍청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지민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정국이 꾸부정하게 있던 몸을 바로 일으키더니 성큼성큼 상자에서 나와 지민에게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멍하니 앉아 있는 지민의 팔을 덥석 잡아 일으켜 세웠다. 지민은 위로 끌려 올라가는 몸에 놀라 정국의 팔뚝을 붙잡았다. 탄탄한 팔뚝이 느껴졌다. 정말 꼭 사람의 몸을 만지는 것과 같은 감촉이었다.


“우와.”


감탄사를 내뱉은 지민이 저도 모르게 정국의 팔뚝을 쭈물거리기 시작했다. 귀여운 토끼 같은 얼굴과는 달리 탄탄하고 탄력 있는 몸이었다. 정국의 팔뚝을 만지던 지민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정국의 볼을 덥석 붙잡더니 아프지 않을 정도로 말랑말랑한 볼을 꼬집기 시작했다. 찹쌀떡처럼 말랑한 볼은 정말 안드로이드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헤에. 신기하다는 듯 정국의 볼을 꼬집던 지민이 이번에는 머리까지 쓰다듬었다. 역시 최신 모델이라 그런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딜 봐도 진짜 사람 같았다.

정국은 자신의 팔뚝을 만지다가 볼을 꼬집고 머리까지 쓰다듬는 지민을 의아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큰 눈을 굴렸다. 지민의 행동이 뜻하는 의미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얌전히 손길을 받아내던 정국이 결론을 내렸는지 지민의 등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정국의 몸 이곳저곳을 신기한 듯 건드리고 있던 지민은 갈비뼈가 으스러질 듯 자신을 끌어안아 오는 손길에 화들짝 놀랐다.


“뭐, 뭐 하는 거야!”

“이게 아니에요?”


정국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자신을 밀어내는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의 행동에 대한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정국은 조금 풀이 죽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꼭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져서 지민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정국을 끌어안곤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정국이 지민을 마주 안아왔다. 보통 가사용 안드로이드랑 이런 걸 하나? 분명 아까 훑어본 설명서에는 가사용 모델이기 때문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도 가사용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이상했지만, 아기토끼 같은 정국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지민은 그냥 요새 기술력이 매우 좋나 보다는 생각으로 모든 의문점을 넘기기로 했다.

자꾸 달라붙는 정국을 떼어낸 후 지민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설명서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어봤다. 몇 번을 읽어봐도 평범한 가사용 안드로이드에 대한 설명만 나와 있을 뿐이었다. 보증서와 커스텀 정보가 적힌 종이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정국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설명서를 뒤적이는 지민의 뒤에 딱 붙은 채로 앉아 슬금슬금 지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세상에 어느 가사용 안드로이드가 이렇게 주인과 접촉을 하지 못해 안달이란 말인가.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지민이 몇 번이고 설명서를 읽어보는 동안 정국은 태연하게 말랑한 볼이 지민의 등에 눌린 채로 웅얼거렸다.


“오래전부터 형이 있었으면 했어요.”

“으응…그랬구나….”


지민은 정국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설명서를 내려놓고 휴대폰 검색창을 열어 안드로이드에 관한 최신 기사나 칼럼을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최신의 기사를 읽어도 가사용 안드로이드는 어디까지나 가사용으로 프로그래밍 됐다는 사실만 확인받을 뿐이었다.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바디도 의문투성이였다. 가사용 안드로이드는 가장 보급이 많이 된 기종들이었고, 그만큼 안드로이드 중에서는 저렴했다. 안드로이드를 구매해본 적 없는 지민이라고 해도 정국의 성능이 그냥 가사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좋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친구가 산 가사용 안드로이드의 모델은 정국보다 한 단계 하위 모델인 HK-900 이었는데 아무리 정국이 최신 모델이라지만 달라도 너무 달랐다.

지민이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는 사이 정국은 지민의 온기를 느끼며 기분 좋은 얼굴로 가만히 앉아 있는 중이었다. 지민이 말을 걸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언가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었기에 정국은 가만히 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지민이 설명서와 보증서를 뒤적이고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앉아 있던 정국의 느리게 깜빡이던 눈이 곧 감기기 시작했다. 오늘 막 출고된 바디는 더 많은 충전이 필요했다.

그러는 동안 지민은 웹사이트에 올라가 있는 각종 후기를 읽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같은 모델을 구매했다는 사람의 후기들 속 안드로이드는 정국과 같은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달랐다. 정확히는 정국이 후기들 속의 모델과 같은 모델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거였지만.


“정국아, 너….”


한참을 액정을 들여다보던 지민은 문득 이렇게 머리 아프게 생각할 게 뭐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구부정하게 앉아 있던 허리를 세우며 지민이 자신의 등에 거북이 등껍질마냥 붙어 있는 정국을 불렀다.


“…….”

“정국아?”


정국은 답이 없었다. 지민은 여전히 자신의 등에서 느껴지는 무게에 의아한 얼굴로 낑낑거리며 몸을 틀었다. 지민의 몸이 반쯤 돌아가며 지민의 등에 기대 있던 정국의 몸도 옆으로 쏠렸다. 쿠당탕 소리와 함께 쓰러진 정국에 놀란 지민이 평소보다 두 배로 커진 눈을 하곤 쓰러져 있는 정국을 돌아봤다.


“정국아!”


다급한 손길이 정국의 몸을 흔들었다. 갑자기 안드로이드가 쓰러지는 일도 있나? 그보다 안드로이드인데 이렇게 흔든다고 일어날까? 지민의 머리가 바쁘게 굴러갔다. 전원이 꺼진 걸까? 지민은 처음 상자 안에 들어있을 때처럼 눈을 감고 있는 정국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정국의 등 뒤로 손을 뻗었다. 다시 한 번 전원 스위치를 눌러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스위치는 손에 걸리지 않았다. 방금 본 후기 글에서도 분명 스위치가 등 쪽에 있는 사진을 봤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으음…어쩔 수 없지.”


눈을 뜨지 않는 정국을 바라보며 지민은 직접 스위치를 찾아보기로 했다. 정국이 입고 있던 하얀 무지 티를 붙잡고 벗기려는데 꼭 잠든 사람의 옷을 몰래 벗기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바디 때문에 더 그랬다.

지민은 조심스럽게 정국의 무지 티를 벗겨 옆에 내려놓았다. 근육이 잡혀 탄탄한 상체가 드러났다. 머리로는 그냥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어째서인지 얼굴에 열이 몰려 빨개지기 시작했다. 지민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정국의 몸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후 맨 등을 바라봤다.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매끈한 등뿐이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정국을 눕힌 지민이 눈을 비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정국의 등을 살펴보았지만, 스위치 비슷한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 여기 있어야 하는데….”


등뿐만이 아니라 벗은 상체 어디에도 스위치는 보이지 않았다. 지민은 정국의 목덜미를 살피느라 정국의 몸 위로 올라탄 채 생각에 잠겼다. 상체는 다 살펴봤고 남은 곳은…. 지민은 삐걱거리며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에이, 설마…싶은 마음이었지만 아무리 상체를 살펴도 스위치가 보이지 않았으니 답은 하나였다.


“대체 왜 이런 데다 만든 거야….”


아래로 내려온 지민이 정국의 바지 버클을 손에 쥔 채로 민망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걸 벗겨도 되는 걸까. 안드로이드고 심지어 가동도 중지된 채였는데 지민은 한참을 버클을 잡은 채 망설였다. 천사 같은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정국의 얼굴을 보니 더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입술만 달싹거리던 지민이 이내 결심한 듯 정국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리고 바지를 벗기려고 하며 고개를 드는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크고 맑은 눈과 마주쳤다.


“어, 어…. 이건 그러니까….”


당황한 지민이 왜 자신이 변명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허둥거리며 말을 이었다. 말 대다수는 문장이 되지 못하고 흘러나왔다. 정국은 말없이 그런 지민을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생각을 다 끝낸 것인지 다음 순간 정국이 망설임 없이 몸을 뒤집어 그대로 지민을 바닥에 눕혔다.


“흐어억!”


지민이 순식간에 돌아가는 시야에 놀라 이상한 감탄사를 뱉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시야에 가득 들어차는 정국의 얼굴에 지민은 숨을 들이마신 채로 다시 내시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멈췄다. 마냥 맑고 예쁘다고 생각했던 정국의 눈동자가 다른 빛을 내고 있었다. 지민은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한 듯 눈을 굴리며 팔을 엑스자로 교차시켜 자신의 몸을 감쌌다. 정국이 물끄러미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뭐, 뭐, 뭐 하려는 거야…?”


지민이 꿈틀거리며 몸을 위로 조금씩 움직이며 물었다. 정국은 태연한 얼굴로 다시 지민의 몸을 쭉 당겨 자신의 밑에 놓았다. 그러고는 큰 눈을 깜빡이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섹스요.”

“뭐, 뭐?”


당황한 지민이 정국의 어깨를 밀어냈다. 당장에라도 입을 맞출 기세로 가까이 다가오던 정국은 순순히 밀려나 주었다.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채 멍한 얼굴로 정국을 바라봤다. 되려 정국은 지민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세상에 어떤 가사용 안드로이드도 섹스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지민은 옆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주워든 후 주저 없이 안드로이드 제작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는 동안 정국은 무지 티를 주워입고 얌전히 무릎을 꿇고 앉아 지민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몇 가지 인증 후 상담원과 통화가 연결되었다.


―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저…배송이 잘못 온 것 같아요.”

― 배송이 잘못 왔다는 말씀입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확인 후에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네.”


지민은 입술을 꾹 깨문 채로 상담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상담원이 미안한 목소리로 착오가 있었음을 전해왔다.


― 확인해보니 기종이 바뀐 것 같습니다. 고객님께서 원하신다면 회수 후 다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럼 회수를….”


지민은 무심코 뒤를 돌았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말간 얼굴과 마주쳤다. 정국의 큰 눈이 불안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 회수 진행 도와드릴까요?

“…….”


정국과 눈이 마주치자 지민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객님? 상담원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회수해가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지민은 다른 것을 물었다.


“회수되면 어떻게 되나요?”

― 이미 커스텀이 완료되었기에 폐기됩니다. 저희 쪽 실수이니 따로 고객님께서 부담하실 건 없습니다.


폐기라는 말이 지민의 가슴에 와서 콱 박혔다. 저렇게 예쁜 아이를 폐기한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민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럼 교환하지 않고 계속 사용해도 되나요?”

― 물론입니다, 고객님. 고객님께서 원하신다면 교환 없이 사용하셔도 됩니다.

“아, 그럼 계속 사용할게요.”

― 계속 사용하시겠습니까?

“네. 아, 그런데 바뀐 기종은 어떤 기종이죠?”


지민은 아까부터 머릿속에서 사이렌을 울리던 자신의 예상이 빗나갔기를 빌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 고객님께서 주문하셨던 기종은 가사용 안드로이드 HK-910 이며, 바뀐 기종은 성인용 안드로이드 SS-1090입니다.

“아…네, 감사합니다.”

― 해당 기종에 대한 설명서는 고객님의 메일로 한 번, 자택 주소로 한 번 발송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고객님.


상담원과의 통화를 끝마친 지민은 얼빠진 표정으로 정국을 바라봤다. 정국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돌아와 얌전히 앉아 지민을 보며 눈을 깜빡였다. 어쩐지 그 폭이 좁고 단순하게 커스텀 되는 가사용 안드로이드치고는 너무 세심하고 완벽하게 지민이 원하던 대로 디자인이 되었다 싶었다. 왜 처음부터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지? 고민하던 지민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상하단 걸 느끼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취향에 딱 부합하는 정국의 모습에 다른 생각을 할 정신을 빼앗긴 것이었다.

고민하는 사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지민은 메일로 도착한 SS-1090 모델에 관한 설명서 파일을 열어봤다. 제작 목적에 충실한 기능들이 설명되어 있었다. 어딘가 낯뜨거워지는 기분에 지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가사용 안드로이드를 샀는데 업체 측의 실수로 바뀌어 온 기종이 하필…. 지민이 구매한 가사용 안드로이드와 성인용 안드로이드는 기본적으로 두 배 이상의 가격이 차이가 났다. 두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한숨을 푹 쉰 지민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가격에서 큰 이득을 봤고 또 정국은 이상형에 부합하기도 하고….


“저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이제까지 말이 없던 정국이 오랜 침묵을 깨고 물었다. 지민은 고개를 들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간 얼굴을 바라보다 미소 지었다.


“어떻게 되긴. 형이랑 계속 사는 거지.”


정국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그 얼굴이 꼭 진짜 기쁜 감정을 느낀 사람의 얼굴 같다고 생각하며 지민은 양팔을 벌린 채 정국을 불렀다.


“이리와.”


정국은 군말 없이 얌전히 지민의 품 안에 안겨주었다. 지민은 정국의 등을 두어 번 토닥인 후 몸을 떼어내고 제법 엄한 얼굴로 말했다.


“섹스는 안 해.”

“왜요?”

“어…다음에. 다음에 하자.”


정국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처럼 이렇게 포옹하는 건 괜찮아.”

“뽀뽀는요?”


지민은 생각지도 못한 물음에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정국을 바라봤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자신의 취향을 완벽하게 반영한 저 귀여운 얼굴에 뽀뽀라도 왕창 해줄 생각이었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해도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민의 볼에 정국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정국의 입술이 닿았던 뺨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손등으로 얼굴을 비빈 지민이 빨개진 얼굴을 한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 밥 먹자!”


민망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꺼내다 보니 밥 먹자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물론 안드로이드가 밥을 먹을 리는 없었지만, 정국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큼큼. 헛기침한 지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부엌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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