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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제로 디그리 05

러브 레시피




쳇바퀴처럼 일상은 굴러간다. 지민은 여전히 식빵 한쪽을 물고 허둥지둥 집을 나서고 정국은 이를 배웅한다. 배웅을 마친 정국은 식탁을 치우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방을 정돈하고 지민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며 기다릴 것이다. 다를 것 없는 하루였지만, 한 가지 새로운 일이 이제부터 추가될 예정이었다.

정국은 지민이 떠나자마자 부엌을 간단하게 정돈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민은 제법 성실하게 냉장고가 비지 않게 채워 넣는 편이었는데 최근 들어 바빠진 일 때문에 냉장고가 점차 비어가는 중이었다. 정국은 부지런히 시선을 옮겨가며 냉장고 안을 샅샅이 살폈다. 냉동실까지 살핀 후 남아있는 재료로 할 수 있는 최적의 레시피를 찾았다. 이로써 정국의 일과가 완성되었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정국은 뿌듯한 얼굴로 소파로 올라가 반듯하게 누웠다. 물론 쿠키를 품에 안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처음에는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어느새 익숙해졌다. 지민은 첫날에 비하면 눈에 띄게 줄은 자료 뭉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뭐가 되었던 빽빽한 활자와 씨름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었다.

금요일까지 다 정리해서 파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에는 조금 여유가 생길 것도 같았다. 주말에 뭘 할지는 길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마침 냉장고도 텅 비어가겠다, 정국과 함께 장이라도 보러 갈 생각이었다.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정국은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고 매번 집안에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려오던 참이었다.

안드로이드의 보급률이 50%에 가까워지던 시점에선 가사용 안드로이드들이 홀로 장을 보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현재는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 되었다. 당시 급격하게 증가하던 보급률과 함께 커지던 안티 안드로이드 정서가 과격하게 표출되며 혼자 돌아다니는 안드로이드들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다수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가해자들이 모두 재물손괴죄로 처벌을 받으며 점차 잠잠해지는 분위기였지만, 예전처럼 홀로 돌아다니는 안드로이드를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국을 절대 혼자 밖을 돌아다니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안드로이드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혹시 모를 사건에 정국이 휘말릴 생각만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은 일을 빨리 끝낼 필요가 있었다. 지민은 눈매에 힘을 주며 제법 전투적인 자세로 활자와의 싸움을 다시 시작했다.

 


*     *     *

 


오늘도 정확한 시간에 눈을 뜬 정국이 깜빡깜빡 천장을 올려다본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앉은 후 기지개를 쭉쭉 켠다. 몸에 별다른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정국은 개운한 마음으로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오늘은 이불이 얌전하게 흐트러져있었다. 깔끔하게 개어 정리한 정국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다이어리를 펼쳤다. 자신의 일기 옆 페이지로 지민의 글씨가 보였다.

 


x월 xx일 날씨 좋았다, 그치?

침대랑 책상 청소했구나. 잘했어. 예쁘다. 로봇 청소기가 나빴어? 형이 혼내줘야겠네. 우리 정국이 괴롭히지 말라고. …네가 외롭지 않아서 다행이야. 이야, 영화 재밌었겠네. 형도 다음에 한 번 봐야겠다.

형은 오늘 정국이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했어. 사실 이번에 안드로이드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들어와서 공부 중이야. 정국이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막 힘들지만은 않네?

 


그 뒤론 시시콜콜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이 적혀 있었는데 꼭 옆에서 지민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읽어주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지민의 하루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내일 읽으라며 책상 앞에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다이어리를 쓰던 어젯밤 지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음, 그리고 정국아. 정말 인간은 왜 안드로이드와 시합을 하려고 할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정국이 덕분에 형도 되게 생각 많이 하는 기회가 되었다. 분명 그런 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거든!

 


일기가 끝난 지점으로부터 조금 아래쪽에는 정국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지민의 고민 흔적이 남아있는 글이 시작되었다. 정국은 한참 동안 지민이 남긴 답을 눈에 담았다. 이걸 쓰려고 어젯밤 책상 앞에서 끙끙거렸던 지민을 생각했더니 자꾸 웃음이 비죽비죽 새어 나왔다. 정국은 지민의 일기 가장 아랫부분에 작은 글씨를 써넣었다.

 


형이 더 귀여워요.

 


샐샐 웃으며 만족스럽게 다이어리를 들여다보는데 삑삑거리는 소리와 함께 로봇 청소기가 침실로 들어왔다. 정국은 익숙한 소리에 의자를 빙글 돌려 앉으며 미끄러지듯 방 안으로 들어오는 청소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거만한 표정을 한 채 턱을 치켜들곤 한껏 으쓱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이 너 혼내준대. 넌 이제 끝이야.”


다소 유치한 말을 남기고 정국은 도도한 얼굴을 한 채로 침실을 나섰다. 거실로 나온 정국은 아까 소파에서 자다 떨어뜨리는 바람에 바닥에 누워있는 쿠키를 발견하곤 잽싸게 품에 안아 들고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던졌다. 들고나온 다이어리와 펜을 옆에 내려놓았다. 어차피 지민은 오늘도 저녁 시간이 지나고 돌아올 게 분명했으니 그 전까지는 TV라도 볼 심산이었다.

화면을 켜자마자 보이는 것은 진한 키스 장면이었다. 정국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까지 살짝 벌린 채로 굳어 화면을 바라봤다. 사랑해. 나도. 낯간지러운 대사들과 함께 외설적인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침을 꿀꺽 삼킨 정국은 한 몸인 것처럼 서로를 꽉 끌어안은 채 입술을 맞대고 비비고 그러다 혀와 숨결을 섞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주먹까지 불끈 쥔 채 지켜봤다. 지민과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뭐, 뭐, 뭐야! 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물든 채 지민은 소파에 거의 눕다시피 한 채로 말했었다. 숨을 색색 몰아쉬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한 번 더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자꾸 자신의 눈을 피하는 지민에 정국은 조금 풀이 죽은 듯한 목소리로 물었었다. 싫었냐고. 혹시나 지민이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다시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마음은 먹었지만, 정말 싫다는 대답을 들으면 조금 서운할 것도 같았다. 긴장한 채로 답을 기다리는 정국에게 지민이 들려준 대답은 굳어 있던 정국의 얼굴이 단번에 미소로 바뀔만한 것이었다.

아, 아니…싫진 않았는데…. 뛸 듯이 기뻐 정국은 팔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지민을 완전히 뒤로 눕힌 후 다시 한번 키스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지민의 얼굴이 좋았다. 말캉한 입술의 감촉도 따뜻한 숨결도 전부 다 좋았다. 정국은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의 키스가 끝났을 때 지민은 얼굴은 잘 익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다시 다가가려는 정국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막은 지민이 그만 자러 가자며 허둥거렸다.

정국은 지민이 싫은데 말을 하지 않는 것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다음날 다시 입을 맞췄을 때 밀어내지 않는 지민의 모습에 조금 용기를 얻었다. 여전히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지만, 지민은 한 번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주말의 일이 떠오른 정국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지민과 키스하고 싶었다. 닿고 싶었다. 안드로이드에게 있어 감정조차도 프로그램의 일종이며 학습된 것이라면 지금 자신이 지민에게 품는 마음까지도 모두 그저 데이터의 작용일뿐인 걸까. 정국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너는 답을 알고 있니?”


정국이 쿠키를 바라보며 물었다.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있는 화면은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였다. 정국은 TV를 보는 대신 소파에 엎드려 다이어리를 펼쳤다.

 


x월 xx일 날씨 오늘도 맑음!

오늘은 형이 잘 일어나서 깨우기 쉬웠다. 일주일 중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날이었다. 근데 분명히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거 같은데 왜 형이 평소랑 나간 시간이랑 똑같지? 뭐가 문제일까요? 아무튼. 오늘 로봇 청소기한테 형이 널 혼내줄 거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꼭 혼내줘야 해요!

오늘 본 영화에서 주인공 둘이 키스만 십 분을 한 거 같아요. 우린 더 길게 했어요. 뿌듯하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 그때. 그날 밤에 싫진 않았다고 했잖아요. 그럼 좋았어요? 궁금해요. 나는 이게 무슨 기분인지도 궁금해요. 그냥 내 데이터가 일으키는 반응인 걸까요? 형에게 또 키스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부터 형을 위해서 저녁을 만들 거예요. 왜 그동안 말하지 않았어요? 가사용 안드로이드가 필요했던 거라고. 내가 못 미더워요? 그렇다면 조금 실망이에요. 흥.

 


다이어리를 덮은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차근차근 재료를 꺼내며 정해두었던 메뉴의 레시피들을 곱씹었다. 요리해본 적이 없었기에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걱정보다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컸다.

쌀을 씻고 밥을 안친 후 재료 손질에 돌입했다. 당면을 따뜻한 물에 불려놓고 채소를 꺼내 꼼꼼하게 씻었다. 각종 양념을 찾아 찬장을 이리저리 뒤적이자 곧 일렬로 줄지어 놓인 양념통들을 찾을 수 있었다. 씻은 당근과 양파를 집중해서 채썰기를 하고 버섯도 쭉쭉 찢어 놓았다. 채소들을 살짝씩 프라이팬에 볶기까지 끝마쳤다.

그다음은 레시피대로 움직이는 것뿐이었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끓는 물에 시금치를 데치고 찬물로 헹군 후 레시피에 나온 정량대로 심혈을 기울여 양념을 넣고 간을 했다. 양념장을 만드는 순간의 정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진지했다. 한 방울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눈까지 부릅뜬 채로 양념의 재료들을 넣은 후 잘 섞어 주었다.

그러는 사이 불어난 당면을 건져 황금비율로 만든 양념장과 함께 볶다가 손질해둔 채소들을 넣고 또 볶으면 완성이었다. 요리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뭐야, 요리 별거 아니네! 지민이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완성된 잡채를 접시에 예쁘게 옮겨 담았다.

정국은 시간을 확인했다. 예상 시간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쓴 참이었다. 지민이 곧 올 것 같아서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기로 했다. 이제 베이컨과 김치와 밥을 볶아 볶음밥만 만들면 끝이었다. 김치를 꺼내 먹기 좋게 썰며 정국은 스스로가 대견해서 하얀 이를 보이며 뿌듯하다는 듯 웃었다. 분명 지민이라면 좋아해 줄 것 같았다.


“휴. 다 만들었다.”


볶음밥까지 완성하여 식탁에 올려놓고 숨을 고르기 무섭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정국은 자리에서 튀어 올라 현관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갔다.


“형!”

“어, 정국아. 잘 있었…그 옷은 뭐야?”

“이거요? 앞치마잖아요.”

“어, 아니, 그건 아는데. 왜 입고 있어?”


정국은 당장 형을 위해 특별히 요리를 해봤다는 말을 하고 싶어 간질거리는 입을 꾹꾹 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씰룩이는 정국의 입꼬리를 보며 지민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빨리 들어와요. 빨리!”


평소보다 보채는 정국의 모습에 지민이 서둘러 욕실에서 손만 씻고 나와 정국의 뒤를 따랐다. 집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짠! 지민을 등지고 있던 정국이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몸을 돌려 몸으로 가리고 있던 식탁을 보여주었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지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란 얼굴로 쳐다보자 보자 쑥스럽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는 정국이 보였다.


“형 주려고 만들었어요.”

“진짜 생각지도 못했는데. 감동이다.”


지민은 진심이었다. 정국의 모델이 가사용이 아니란 것도 알았고 애초에 가사용 모델을 구매하려고 한 것도 가사가 급해서가 아니라 외로움이 빚어낸 충동 때문이었다. 당연히 정국에게 가사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청소하는 것도 순전히 정국의 의지였고 말리지 않은 이유는 정국이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민은 지금의 상황이 꽤, 아니 아주 많이 가슴 찡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먹어본 게 얼마 만이더라. 그것도 어떤 의무나 목적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자신을 생각해서 해주는 것을.


“맛있게 먹어야 해요!”


선 채로 감동하는 지민을 끌어다 자리에 앉힌 정국이 허리에 손을 얹고 제법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저를 들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시식을 앞두니 긴장이 되는지 정국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지민의 반응을 기다렸다.

볶음밥을 한 입 입에 넣은 지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곧바로 잡채를 입에 넣었다. 정국은 긴장감에 침을 꼴깍 삼켰다. 분명 자신만만했는데 갑자기 지민의 입에서 맛없다는 말이 나올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국아, 이거….”


음식을 꼭꼭 씹어 삼킨 지민이 진지한 얼굴로 정국을 바라본다. 영혼이 빠져나가 텅 빈 듯한 정국의 시선이 지민에게로 향했다. 설마 맛이 없나? 레시피도 완벽하고 오차 없이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정국의 시선이 갈 곳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민은 그런 정국이 귀여워 조금 더 놀려줄까 하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와하하, 웃어 버렸다. 의아한 시선이 따라붙는다.


“맛있어, 진짜로. 왜 그렇게 눈이 흔들려?”

“아, 안 흔들렸는데요! 진짜 맛있어요?”

“그럼.”

“진짜로?”


지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정국은 마음이 놓인다는 듯 앞니를 내보이며 웃었다.


“여기 앉아 봐.”


자기 앞자리를 톡톡 치는 지민에 정국이 냉큼 자리에 앉아 턱을 괸 채 지민을 바라봤다. 안절부절못하며 지민의 반응을 살피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여유가 넘치는 얼굴이었다. 저런 얼굴은 정말로…반칙이었다. 계속 보고 있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하자마자 머릿속에 사는 천사와 악마가 또 튀어나왔다.

동생한테 설레는 형이 어딨어? 악마가 귓가에 속삭인다. 서, 설레기는 내가 언제…! 지민이 억울하다는 듯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번엔 천사가 말한다. 그냥 받아들여. 지민은 다소 신경질적으로 잡채를 잘근잘근 씹었다. 갑자기 과격하게 움직이는 지민에 정국이 놀란 듯 눈썹을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지민은 아차 싶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을 담아 웃어 보였다.


“왜 화냈다가 웃었다 반복하는 거예요? 형, 좀 이상해요.”

“아무것도 아니야…. 이건 그냥….”


너 때문에 머릿속이 조금 복잡해.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지민은 뒷말을 흐렸다. 정국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의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봤다. 너무, 너무 맛있어서 그래! 허둥거리며 꺼낸 말은 고작 그런 거였지만 지민을 가만히 바라보던 정국은 언제나 그랬듯이 지민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

맛있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지민이 부른 배를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해줬으니 설거지라도 할까 하는데 정국이 뒤에서 잡아끌었다.


“내가 할게요. 가서 씻어요. 피곤할 텐데.”


의연하게 고무장갑을 찾아 끼며 말하는 모습이 듬직해 지민은 정국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였다. 고마워. 그렇게 말하곤 욕실로 향하는 뒷모습을 정국이 어딘가 살짝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 왜 자꾸 엉덩이를…. 도무지 지민이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씻고 머리의 물기를 털며 나온 지민은 정돈된 집을 둘러 보다가 침실로 향했다. 오늘도 쿠키를 꼭 끌어안고 침대에 누운 정국의 모습이 반겨주었다. 지민은 바로 책상으로 향했다. 덩그러니 올라간 다이어리가 지민을 반겨주고 있었다.

지민은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넘겼다. 정국이 오기 전에 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요즘은 퇴근 후 집에 돌아가는 것이 기다려졌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써놨으려나. 기대되는 마음으로 정국의 일기를 읽던 지민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요? 아니, 그냥 귀여워서. 저 귀여워요? 응. …그러면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요. 응? 옆 페이지에 글을 적던 지민이 옆을 돌아봤다. 정국이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정국아?”

“맨날 말로만 귀엽다고 하지 말고….”


지민이 당황한 듯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정말 동생이라고만 생각하는데 왜 당황스러워하는 거야? 어느샌가 나타난 마음속 악마가 속삭인다. 그러게. 나 왜 당황스러워하는 거지? 정국이 너무 충격적으로 귀여워서? 물론 그렇긴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였다. 그러면 뭔데? 머릿속에서 말을 걸던 악마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민 자신이 나타나서 물었다. 지민은 스스로에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게, 진짜 뭔데.


“자, 잠시만….”

“농담이에요. 뭘 그렇게 당황해요?”


그런 지민의 혼란이 무색하게 정국은 태연하게 몸을 바로 해 천장을 보고 누웠다. 정국이 농담이라며, 장난이라며 툭툭 던지는 돌에 맞는 순간 지민은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어딘가 억울해졌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눈을 감고 누워있는 말간 얼굴을 보니 더 그랬다.

지민은 씩씩거리며 쓰다 만 일기를 마저 이어쓰기 시작했다. 어제와 달리 자신을 향한 시선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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