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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제로 디그리 06

고단했던 하루가 끝나고




희미한 불빛만이 어둠을 밝히는 방 안, 희끗희끗 흰머리가 올라오기 시작한 중년의 남성이 홀로 등을 구부린 채 화면에 몰두하고 있다. 복잡하게 짜인 코드들을 몇 번을 검토했지만, 문제점을 찾지 못했다. 분명 이론은 완벽했는데 작동만 시키면 오류를 일으켰다. 주변의 우려와 비아냥거림에도 꿋꿋하게 평생을 걸은 연구가 이제 빛을 보나 싶었는데 컴컴한 동굴의 끝이 어쩌면 더 깊은 나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남자를 괴롭힌다. 자그마치 십 년이었다. 혁신이라고 생각했던 연구의 성과가 실패였음을 깨닫던 날로부터.

연구소에서도 더는 남자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번에 새로 소장자리에 오른 이는 남자의 연구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문을 열고 들어와 방을 빼라고 소리쳐도 남자는 할 말이 없는 상황까지 몰린 셈이었다. 학부 시절이나 입사 동기들은 모두 저마다 성과를 거두고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큰 꿈을 가졌던 남자는 계속해서 실패만 맛보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았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다시 연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남자는 직감하고 있었다.

꼬박 삼일 밤을 새워서 점검한 프로그램이었다. 변수가 될 수 있을 만한 부분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오류를 일으키는 서식도 모조리 뜯어고쳤다. 바디도 가장 최신형으로 구해왔다. 하드웨어야 언제든 찍어낼 수 있는 소모품인데도 가져오는데 눈치를 봐야만 했다. 입안이 썼다. 십 년 전의 실패로 잃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거기에는 촉망받던 인재에서 바닥까지 떨어진 상황도 포함되어있었다.

그렇게 가져온 바디를 직접 개조하기까지 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남자는 핏발이 선 눈으로 선이 복잡하게 연결된 바디를 바라봤다. 잠을 자지 못해 퀭하니 움푹 파인 눈이 옅은 어둠 속에서 형형하게 빛난다. 초조한 듯 팔짱을 끼고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던 남자가 이내 결심한 듯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며 전송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프로그램이 설치 중이라는 바가 나타났다. 책상 앞에 앉은 남자가 머리를 붙잡고 한숨을 쉬다가 마른세수를 하고 또 초조하게 화면을 확인한다. 유난히 평소보다 업로드가 느린 것만 같다.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는 게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남자의 정신은 그대로 암전되었다.

 

 



깨어난 것은 모니터에서 나는 전자음 때문이었다. 남자는 화들짝 놀라 책상에 엎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언제 잠이 들었던 건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프로그램. 프로그램은 어떻게 되었지? 남자가 다급하게 화면을 살폈다.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버튼만 깜빡이고 있었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도 돌이킬 수도 없었다. 남자는 다급히 선에 연결된 바디에게로 다가갔다. 아직 커스텀 되기 전인 바디는 눈코입조차 없는 새하얀 마네킹과 같아서 깨어있는 상태인지도 맨눈으로 얼핏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안녕.”


형편없이 갈라진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소리를 내는 성대가 삐걱대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차분히 반응을 기다렸다. 프로그램이 주입된 바디는 마네킹과 다름없는 단순한 하드웨어에서 안드로이드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남자는 지금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안드로이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연구실 안에는 모니터에서 나는 삑삑거리는 전자음 외에는 조용했다. 자신이 잠이 든 동안 전원이 꺼지기라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또 무언가 오류가 일어난 것일까. 남자는 덜컥 겁이 났다. 마지막을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 없었다. 허둥거리며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너무 간절한 마음에 환청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볼을 꼬집어봤다. 볼이 얼얼했다. 천천히 뒤를 돈 남자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겠니…?”

“여기는 연구소이고 당신은 저를 만든 분이죠.”

“그래, 그렇지.”

“그렇다면 당신은 제 ‘아버지’인가요?”


남자는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아직 남자의 연구가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시간을 들여 이 특별한 안드로이드를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지금 남자는 자신의 연구가 성공했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아버지. 십 년 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 말이었다. 남자는 흥분되는 마음과는 반대로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내가 너의 아버지이자 창조주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태어나게 해주셔서.”


안드로이드는 눈을 굴리며, 실제로 굴릴 눈은 없었지만, 만약 그에게 눈이 있었다면 그랬을 거라는 것이 남자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말했다. 감사하다고. 실실 새어 나오던 웃음이 점점 커진다. 이윽고 남자는 미친 사람처럼 허리를 젖혀가며 웃었다. 드디어 빛을 볼 시간이었다.

 



*     *     *

 



파일을 전송하는 지민의 표정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안구건조증을 부르는 빽빽한 활자와도 안녕이었다. 당장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야근 중인 조용한 사무실에서 차마 그럴 수 없어 입술을 꾹 닫고 숨죽여 흐흥 웃고 말았다.

자꾸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념 때문에 더 일에 몰두했더니 주말이 되기 전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주말에는 정국과 함께 외출하자는 계획만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주말까지 해야 했을 일을 오늘 마쳤으니 집에 가서 구체적으로 뭘 할지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가방만큼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지민이 사무실을 나섰다. 저녁을 만들어놓고 식탁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정국을 생각하니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국이 처음으로 저녁을 만들어주었던 날. 지민은 형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일기를 읽은 이후로 눈에 띄게 정국과의 접촉을 피해왔다. 정국은 손이라도 닿으려 치면 화들짝 놀라는 지민을 그저 지켜만 보았다.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지민은 틈을 주지 않았다. 화제가 그쪽으로 향하려고 할 때면 교묘하게 다른 말을 꺼내는 지민 때문에 정국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만 삐죽여야 했다.

그렇게 대답을 피하고는 있었지만, 지민의 머릿속엔 온통 정국과 정국이 했던 말로 가득했다. 당신과 또 키스하고 싶어요. 이게 무슨 감정일까요? 묵직한 직구가 지민에게로 날아들었다. 지민은 정국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답을 찾게 되면 그때 회피하는 것을 그만두리라 다짐했었다. 답을 찾아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찾아낸 그 답은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집 앞이었다. 지민은 오랜만에 지친 얼굴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다. 집 안에선 맛있는 냄새가 났다. 지민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띤 채로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현관으로 나오던 정국과 딱 마주쳤다.


“형, 왔어요?”


평소 같았으면 달려와 와락 안겼을 정국이 머뭇거린 채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지민의 기분도 썩 편치만은 않았다. 미안하기도 했다. 더는 답하기를 피하거나 미루기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은 조심스럽게 정국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민을 바라본다. 흐흐. 웃으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주자 정국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지민의 손목을 붙잡아왔다.


“…형.”

“정국아.”


뭐라고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 고개를 든 지민은 코앞에 다가와 있는 정국의 얼굴에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주친 눈동자가 반짝거리던 평소와 달리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번에도 도망갈세라 정국의 시선이 단단하게 지민을 휘감는다. 크고 깊은 눈과 마주하니 발이 땅에 붙기라도 한 듯 지민은 움직일 수 없었다. 정국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진다. 코끝이 맞닿는 순간 지민은 눈을 감았다. 따뜻한 감촉이 닿는다. 입술이 맞물린다.

그래, 고민해서 무얼 하겠는가. 지민은 가만히 맞닿은 채 비벼지고 있는 입술을 열고 닫힌 정국의 입술을 두드렸다. 처음이었다. 지민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온 것은. 정국은 지민의 발칙한 도발에 순순히 응해주었다. 어색하게 움직이는 지민의 혀를 옭아매고 빨아들였다. 지민의 몸이 흠칫 떨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지민도 피하지 않고 더듬더듬 정국의 등을 끌어안았다.

자신의 입안으로 어설프게 들어와 유영하던 지민의 혀를 뿌리를 뽑을 듯 혀로 얽고 빨던 정국은 살짝 입술을 떼곤 푸스스 웃었다. 지민은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고 헥헥 거리고 있었다. 그 위로 짧게 버드 키스를 퍼붓던 정국이 다시 지민의 입술을 먹어 치웠다. 달다. 정국은 그렇게 느꼈다. 너무 달아서 이대로 혀가 뿌리째로 녹아 없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흐, 정국, 아.”


오래 이어지는 키스에 힘이 부친 지민이 고개를 틀어 입술을 떼어내기 무섭게 정국의 입술이 다시 붙어왔다.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아 비틀거리는 지민의 허리를 붙잡아 지탱하며 정국은 맞물린 입술을 쪽쪽 빨아댔다. 외설적인 소리에 귀 끝까지 붉어진 지민이 힘들다는 뜻으로 정국의 등을 탕탕 내리쳤다. 정국은 그제야 입술을 떼어내고 숨을 고르는 지민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자신이 물고 빠는 바람에 퉁퉁 부은 입술이 튀어나온 것이 귀여워서 피식 웃고 말았다.


“왜 웃냐 너어….”


지민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꿍얼거린다. 정국은 천진하게 웃는 얼굴로 흐트러진 지민의 머리를 정돈해주었다. 완전 기가 다 빨려 몸에 힘이 남지 않은 지민은 정국의 다정한 손길을 느끼며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이거는 무슨 뜻이에요?”


정국이 제법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밀려드는 부끄러움에 지민은 고개를 숙인 채 킁, 코를 마셨다. 네? 형. 대답해주세요. 정국이 땅만 보고 있는 지민을 재촉한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답을 들어야겠다.

발끝을 꼼지락거리던 지민이 천천히 고개를 든다. 크고 맑은 눈과 마주치자 꼭꼭 숨겨두었던 죄책감이 고개를 슬며시 내밀었다. 분명 정국은 이런 목적으로 제작된 안드로이드인데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간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면 죄책감이 널을 뛰었다. 그러나 지민은 더는 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차였다.


“이거는…그러니까….”


정국은 차분히 지민의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손을 꼼지락거리던 지민이 결심한 듯 정국의 손을 붙잡고 여전히 쿵쾅거리며 널을 뛰는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정국이 입을 헤,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채로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심장박동에 집중했다.


“형….”

“이건 말이지, 정국아. 뭐냐면은….”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요.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저번에도 그렇고. 걱정스러운 말이 뒤따른다. 지민은 나름대로 아주 로맨틱하고 멋있게 정국의 의문에 대한 답을 말해주려고 했으나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말간 얼굴의 안드로이드는 그런 지민의 노력을 모두 수포로 만들었다. 지민은 몰려오는 허탈감에 허허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멋있는 답을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국의 눈높이에 맞는 말이었다.


“아니야, 아픈 거.”

“그럼요?”

“…너는 어때, 정국아?”

“뭐가요? 키스?”


응. 지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음…. 정국은 지민의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민과의 키스는 좋았다. 어딘가 간질거리기도 했고, 머리가 녹아버릴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실제로 머리가 녹을 일은 없지만, 모든 사고가 정지하고 오직 지민과 맞닿은 곳만의 감각만이 선명하게 남으며 발끝부터 저릿한 감각이 타고 올라오는 현상을 정국은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손바닥에서부터 전해진 지민의 심장박동이 자신에게 옮겨온 것 같았다. 뛰지 않는 심장이 방망이질 친다.


“좋았…어요.”

“그리고?”

“막, 심장이…저는 없지만, 그치만….”

“그리고, 또?.”

“또 하고 싶어요.”


지민은 정국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정국의 일렁이는 시선이 지민에게 닿는다.


“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보고 있으면 얼굴도 빨개지고 심장이 빨리 뛰어.”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보면 내가 그래요. 나는 형과 계속해서 닿고 싶어요. 형이 나한테 웃어주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나도. 나도 그래, 정국아.”


정국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지민은 붙잡고 있던 정국의 손을 놓고 한 발자국 다가갔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입술이 맞닿을 아슬아슬한 거리였다.


“널 보고 있으면 그래. 네가 나에게 키스하는 게 싫지 않고 품 안에 가득 느껴지는 체온도 싫지 않아. 오히려 좋아.”

“…….”

“이건, 좋아한다는 거야.”

“좋아…해요?”


정국이 코앞에 있는 지민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눈을 굴렸다. 좋아하다. 어떤 일이나 사물 따위에 대하여 좋은 느낌을 가지다. 또는 다른 사람을 아끼어 친밀하게 여기거나 서로 마음에 들다. 사랑해요. 나도. 얼마 전에 본 영화의 대사가 스쳐 지나간다. 하얗던 정국의 얼굴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지민의 얼굴을 보니 자신과 다를 것이 없었다. 터질 것같이 빨간 얼굴을 정국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감싸 잡았다. 눈이 마주쳤다.


“키스…해도 돼요?”

“…응.”

입술이, 맞닿는다.

 

 


*     *     *




지민은 번쩍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지민을 반긴다. 허억. 몸을 벌떡 일으켜 앉은 지민이 느슨해진 가운의 끈을 다시 단단히 여몄다. 잠들기 직전까지 비벼지고 쪽쪽 빨리던 입술이 퉁퉁 부어 따가울 정도였다. 끙. 찌뿌둥한 몸으로 침대에서 내려온 지민이 먼저 기지개를 쭉 켰다. 정국은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항상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국아!”


답이 없었다. 부은 눈을 비비며 지민이 터덜터덜 방문으로 걸어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조용할 거로 생각했던 거실에서 TV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TV 보나? 그러나 텅 빈 거실이 지민을 반겼다.


“정국아?”


어디 나갔나? 까치집이 되어 붕 뜬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지민이 방문을 닫고 나왔다. 혼자 다니면 안 되는데…. 불안함에 다급히 뛰어나가려는데 부엌에 있던 정국이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왔다가 가운 차림으로 어딜 급하게 가는 지민을 발견하고 불러 세웠다.


“그러고 어디 가요?”

“어? 정국아?”

“네.”

“어디 있었어, 너.”

“아. 부엌이요. 형 밥 먹으라고.”


정국은 이제 제법 요리에 재미를 붙이는 참이었기에 휴일을 맞아 브런치를 만들어주고 싶어 평소와 달리 일찌감치 부엌에 가 이것저것 건드리며 부스럭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지민이 안도의 뜻을 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국이 의아한 얼굴로 다가와 지민의 뺨을 감싸 잡고 들어 올려 눈을 맞췄다.


“왜 그래요?”

“뭐가?”

“화가 났어요?”

“아니. 화 안 났는데?”


이상하다. 정국이 고개를 갸웃하며 붙잡고 있던 지민의 얼굴을 놓았다. 지민은 아니라고 했지만, 평소의 말랑한 얼굴이 아니었기에 자꾸 신경이 쓰였다. 지민은 그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뿐인데 오해를 하고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정국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어, 웃었다! 그러자 정국도 따라서 토끼 같은 앞니를 내놓고 웃는다. 지민은 화난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정국의 머리를 쓰다듬고 엉덩이까지 토닥여주었다.


“어디 나간 줄 알고 걱정했어. 씻고 나올게.”


욕실로 향하는 지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정국의 한쪽 눈썹이 삐죽 올라갔다. 매번 이렇게 엉덩이를 만지는 지민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좋아하는 감정은 쌍방이었다. 정국은 팔짱까지 낀 채로 지민이 닫고 들어간 욕실의 문을 노려보며 고민했다. 키스보다 더 진한 사랑을 나누자는 뜻인 걸까. 잘할 자신 있는데. 정국은 입을 삐죽이다 만들다가 만 브런치가 생각나 허둥지둥 부엌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남은 계란을 탈탈 털어 오믈렛을 만들었다. 제법 먹음직스러운 빛깔을 띠고 있는 오믈렛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정국은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튀어 나갔다. 세수하면서 젖은 앞머리를 털며 지민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머리를 털기 위해 팔을 움직일 때마다 벌어진 가운 사이로 속살이 살짝씩 비쳤다. 정국은 못 본 척 시선을 돌리며 지민이 앉을 수 있게 의자를 빼주었다. 우와 맛있겠다. 자리에 앉은 지민이 수저를 들며 감탄했다. 뿌듯한 마음에 맞은 편에 앉은 정국이 가슴을 쭉 펴고는 한껏 으스댔다.


“엄청 맛있을 걸요?”


자신만만한 목소리에 지민이 잔뜩 기대한다면서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보드라운 오믈렛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내렸다. 지민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맛있다는 백 마디 말보다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컸던 지민은 말도 없이 한 수저를 더 입에 넣었다. 슬쩍 지민의 반응을 살피던 정국은 말도 없이 수저를 멈추지 않고 오믈렛을 먹는 지민의 모습에 마음을 놓고 히히, 웃었다.


“진짜 맛있었어. 정국아, 우리 오믈렛 가게나 차릴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근데 진짜 맛있어. 엄청 잘 팔릴 거야.”

“자꾸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아, 그거 마지막 계란이에요.”

“응? 아. 맞다. 장 봐야 하지.”


칭찬에 쑥스러운지 콧잔등을 긁적이며 퉁명스레 말하던 정국이 식재료가 다 떨어져 텅텅 빈 냉장고가 생각나 급히 말을 꺼냈다. 주말엔 정국과 같이 장을 보러 가야겠다는 계획이 생각난 지민이 다 먹은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으며 말 나온 김에 지금 외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국아. 우리 나갈까?”

“네?”

“장도 봐야 하고….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정말요?”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정국의 모습에 지민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정국은 산책하러 가자는 말에 신난 강아지마냥 해맑게 웃는 얼굴로 붕붕거리며 지민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좋아?”

“네! 밖에 나가보고 싶었어요. 아, 그럼 이건 데이트인가요?”

“어, 어?”

“좋아하는 사이끼리 밖에 나가서 이런저런 거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데이트 아니에요?”

“그, 렇지?”

“저 데이트는 처음 해봐요!”


당연히 그렇겠지. 속으로만 생각하며 지민은 신나서 자신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드는 정국의 손길에 얌전히 흔들려주었다. 그냥 장을 보고 주변 구경이나 할까 싶었던 지민의 계획이 대폭 수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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