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국민] 제로 디그리 07

24/7





정국은 아이처럼 들뜬 모습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지민의 곁을 맴돌았다. 정신 사나울 법도 한데 지민은 그저 흐뭇한 얼굴로 정국을 지켜봤다.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역시 진작 함께 외출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준비를 대충 끝마치고 일어나는데 하얀 무지 티에 트레이닝 바지 차림인 정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집에 있다 보니 편안한 차림새의 옷만 입었을 정국에게 근사한 옷도 한 벌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을 보는 게 원래의 목적이었으나 계획을 대폭 수정하게 된 관계로 마트를 가는 것은 가장 나중 일정으로 미뤘다.

지민은 오래간만에 헐렁한 정장이 아니라 사복을 찾아 입었다. 머리까지 깔끔하게 정돈한 지민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정국에게 손짓했다. 정국이 쪼르르 달려와 지민의 앞에 섰다. 으음…. 정국을 앞에 세워두고 지민은 제법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왜요? 정국이 고개를 갸웃한다. 아냐 아냐. 가만히 있어 봐. 이미 가만히 있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지민이 이번엔 정국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본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정국이 주춤 뒤로 물러선다. 지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정국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정국은 당황스러웠다. 이건 무슨 뜻이지? 지민과 함께 있을 때면 자꾸 모르는 것이 늘어났다. 정국이 머리를 굴리며 당황스러워하는 동안 지민은 정국에게 어울릴 머리 스타일을 찾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 중이었다. 이렇게…? 아니야, 그것보단 이게…. 혼자 고민하며 이것저것 정국의 머리를 바꾼 이미지를 떠올리던 지민이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찾아내곤 히히 웃었다.


“정국아, 너 머리를 이렇게…어?”


너무 가깝다고 생각하는 순간 입술이 닿았다. 지민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굳었다. 그러는 사이 벌어진 입술 속으로 혀가 밀려들어 온다. 쪽쪽. 낯뜨거운 소리가 청각을 점령했다. 혀가 질척하게 얽혀 들어갔을 즈음 정신을 차린 지민이 허공에 굳어 있던 손으로 정국의 어깨를 콩콩 두드렸다. 정국은 지민의 통통한 아랫입술을 쪽 빨아들인 후 지민에게서 떨어졌다.


“뭐, 뭐야, 갑자기!”

“키스하자는 거 아니었어요?”

“뭐?”

“아니…빤히 쳐다보길래….”


정국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이게 아닌가? 그치만 TV에서는 이러다가 키스하던데…. 조금 억울해졌다. 본 대로 했을 뿐인데. 입을 삐죽거리는 정국을 보며 멍하니 있던 지민이 웃음을 터뜨리며 정국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코끝을 부비며 푸스스 웃는다.


“하고 싶었어?”

“ㄴ…네?”

“형이랑.”

“아니, 그, 형이, 쳐다보니까….”


허둥거리는 정국이 너무 귀여워서 계속 놀리고 싶었다. 지민은 정국의 입술에 짧게 쪽, 입을 맞췄다.


“싫어?”

“아뇨!”


몸을 뒤로 빼려는데 정국이 큰 소리로 부정하며 멀어지려는 지민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다시 몸이 밀착된다.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정국의 볼을 붙잡은 지민이 거리를 유지 시킨 후 머리로 손을 뻗었다. 정국이 미간을 찌푸린 채로 그런 지민을 바라봤다. 불만이 많은 얼굴이었다.


“가만히 있어 봐. 이거 다 하고.”

“다 하고 하게 해줄 거예요?”

“응?”

“키스하고 싶어요.”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는 정국이 날리는 꽉 찬 직구에 지민은 의연하려고 해도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모호한 얼굴로 웃는 지민에 정국이 얼굴을 확 구긴 채로 지민의 허리를 당겨 단단히 안았다. 지민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정국의 붕 뜬 뒷머리를 정리했다.


“알았어. 다 하고.”

“약속했어요!”

“응, 약속.”


키스해주겠다는 확인을 두 번이나 받고 나서야 정국은 지민을 느슨하게 놓아주었다. 여전히 허리는 붙잡은 채였지만.

덕분에 지민은 수월하게 정국의 머리를 정리해줄 수 있었다. 정국을 뒤에 달고 탁상 앞으로 온 지민은 거울 앞 의자에 정국을 앉혔다. 드라이기와 왁스를 이용해 항상 내려와 있던 앞머리를 반 정도 옆으로 넘겨 고정했다. 정국은 기분 좋은 얼굴로 얌전히 지민의 손길을 느꼈다. 히, 기분 좋다. 머리를 만져주니 솔솔 잠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 됐다.”


자신의 머리보다 배는 더 공들여 만진 정국의 스타일은 다행히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 잘생긴 사람은 이마를 드러내야 해. 쉼표 머리로 세팅된 정국은 동글동글한 인상에 조금 더 날카로운 분위기를 더 하며 배는 잘생겨진 것 같았다. 지민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으며 거울 속의 정국을 바라봤다. 정국은 다 됐다는 지민의 말에 천천히 눈을 떴다. 평소와 다른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우와. 거울 속의 자신을 구경하던 정국과 역시나 거울을 통해 정국을 보던 지민의 시선이 거울을 통해 마주친다.

정국은 표정을 굳힌 채 천천히 뒤를 돌았다. 왜? 지민이 입 모양으로 묻는다. 정국은 지민의 목 뒤를 잡고 확 끌어당겼다. 어, 어? 지민이 허우적거리며 정국의 위로 올라타듯 쓰러졌다. 뭐야, 갑자기. 불만스럽게 말하며 고개를 드는데 입술이 맞물린다. 지민의 말은 모두 정국의 입안으로 먹혀들어갔다. 먹힌 것은 물론 말뿐만이 아니었다.


“흐응….”


지민은 정국의 무릎 위에 올라탄 채로 목을 감싸 안고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혀를 받아주었다. 숨이 모자랄 일이 없는 상대여서인지 한 번 키스를 시작했다 하면 좀처럼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입안을 잔뜩 헤집는 정국이 버거워서 지민은 힘이 쭉 빠진 손으로 정국의 어깨를 소심하게 밀어냈다. 턱 근육까지 써가며 키스에 열중하던 정국이 아쉬운지 몇 번 입술을 쪽쪽 빨다가 떨어졌다. 지민은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헉헉 내쉬며 정국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적거렸다.

정국은 자신의 목덜미를 간질거리는 느낌에 킁, 코를 들이마셨다. 아랫배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정국은 지민의 허리를 붙잡고 등허리를 살살 쓸었다. 명백한 의도를 가진 움직임이었다. 숨을 할딱이던 지민이 몸을 뒤틀며 고개를 들어 정국과 마주 봤다. 고요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정국의 검은 눈동자 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저, 정국아. 우리 나가야 해.”

“조금 있다가 가면 안 돼요?”

“아, 안 돼! 예매해놨단 말이야!”

“예매요?”

“아이씨…. 가서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다 망했어. 입을 툭 내민 채 웅얼거리는 지민을 정국이 의아한 얼굴로 올려다봤다. 어느새 평소의 말간 얼굴로 돌아온 채였다.


“영화 보자구…. 표도 예매해놨어.”

“영화요?”

“응. 맨날 집에서 철 지난 영화 보고 있잖아, 너.”


아아. 정국이 탄식했다. 지민은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더니 정국의 위에서 내려왔다. 머리를 만지는데, 물론 키스를 하느라 사용한 시간이 더 컸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지민은 느긋하게 앉아있는 정국의 등을 팡팡 내리치며 재촉했다. 빨리, 빨리! 늦는단 말이야! 그 다급한 목소리에 정국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히 아우터를 꿰어 입고 정국에게도 입힌 지민이 탄탄한 팔뚝을 잡아끌며 현관으로 향했다. 평소엔 서두르는 일 없이 항상 느긋한 정국도 덩달아 발걸음을 빨리했다.


“근데 우리 장 보러 간다고 했지 않아요?”


현관이 닫히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정국이 물었다.


“아, 장만 보고 오기 아쉬워서…. 모처럼 휴일이고 또 너랑 처음 외출하는 거니까.”


단순한 장보기가 아니었다니. 정국의 입꼬리가 씰룩인다. 단순히 장만 보러 가는 길이었어도 기분이 좋았을 텐데 영화관이라니. 정말 데이트하는 연인이 된 것 같았다.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있고, 불타올라 키스도 진하게 하고, 이제 영화까지 보러 가는데 그렇다면 지민과 자신은 연인인 걸까? 자꾸 올라가는 입꼬리를 꾹꾹 잡아 내리는데 지민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너 표정이 왜 그래?”


기쁜 감정을 숨기기 위해 들썩이는 입꼬리와 벌렁거리는 코 때문에 정국의 얼굴은 지금 매우 웃긴 모양새였다. 허리까지 숙여가면서 웃는 지민이 괜히 얄미워져서 정국은 지민의 말랑한 볼을 붙잡고 반죽하듯 이리저리 쭈물거리기 시작했다.


“으으…뭐하는 거야!”


헤헷. 천진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또 화를 낼 수가 없어서 지민은 입술을 내민 채 씩씩거리기만 했다.


“형 되게 지금 화난 병아리 같아요.”

“너 병아리도 알아?”

“와, 진짜….”


정국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지민의 볼을 휙 놓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저한테 저장된 데이터가 형 머리에 있는 것보다 많을 걸요?”

“뭐? 야,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그, 그래. 어린애 아니지…. 정국이 화내는 이유를 알자 조금 미안해지기는 했다. 귀여운 동생 같다고 해서 어린애 취급을 해도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너, 형한테 그렇게 말하면….”

“그리고 이렇게 키스 잘하는 어린애 봤어요?”

“뭐?”

“방금 말은 제가 심했어요. 미안해요.”


정국이 눈을 내리깐 채로 고분고분 사과했지만, 지민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키스 잘하는 어린애 봤어요? 그 말만 계속 반복재생 된다. 정국은 충격받은 얼굴로 서 있는 지민을 두고 먼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뒤늦게 정신 차린 지민이 급히 정국의 뒤를 따랐다. 어딘지는 알고 가는 거야? 앞서가던 정국이 제자리에 멈춰 선다. 지민은 정국의 등에 코를 박기 전에 가까스로 멈출 수 있었다.


“그야 영화관 위치가 뻔하잖아요. 찾으면 다 나오는데.”


아, 그렇지. 지민은 정국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종종 잊었다. 0과 1의 데이터로 이루어진 지식과 사고 체계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     *     *

 



영화는 주말에 가볍게 즐기기 좋은 액션 영화였다. 보기보다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지민의 의사가 백 퍼센트 반영된 선택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사실 건물이 무너지고 폭파되고 시선을 빼앗는 액션 씬에 정신을 빼앗겨 입을 헤 벌린 채로 집중하고 있는 정국의 얼굴을 보느라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나긴 했다. 나름 기대했던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던 건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 스크린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만 두 사람을 관찰한 사람이라면 쉽게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였는데 지민은 영화가 생각보다 시시하여 스크린을 보는 정국의 얼굴이 더 재밌었기 때문이라고 답을 내렸다.

그런 지민에 비해 정국은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이 되어서야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영화 상영 내내 정국을 훔쳐봤다는 것이 들킬 것만 같아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려 딴청을 피웠다. 관객의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웅성거리던 소음이 사그라들자 지민이 넌지시 물어왔다.


“재밌었어?”

“네.”


정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눈이 초롱거리는 것이 정말 재밌었던 듯했다. 다행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보니 종종 영화를 보러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기 전까지는 당분간 하지 못할 일이겠지만.


“다음에도 또 오자.”

“진짜요?”


상영관을 나서며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이 환한 얼굴로 웃으며 뒤에서 와락 지민을 덮치듯 끌어안았다.


“이것도 백허그야?”

“네.”


거의 업히다시피 한 정국을 뒤에 대롱대롱 매단 지민이 자신의 가슴께에 머물러있는 정국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정국의 손이 움츠러든다. 지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따뜻한 손을 주물렀다.


“…형.”

“응?”


자세 때문에 정국의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 울렸다.


“이런 건…섹스어필이에요?”

“뭐?”


지민이 펄쩍 뛰었다. 폭탄 발언을 던진 것치고 정국은 매우 평온한 모습이었다. 지민은 혹여 누가 들었을세라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상영관에서 늦게 나온 탓에 관객 대부분은 이미 다 빠져나간 듯했다. 정국이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린 채로 자신의 손과 지민을 번갈아 바라본다. 꼭 풀리지 않는 문제를 보는 얼굴 같았다.


“손은 왜 그렇게 은근하게 주물렀어요?”

“아니, 그건 그냥….”


지민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당황감에 로비 쪽으로 향하는 걸음이 빨라진다. 결코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진 것이 아니었다. 섹스의 축소판이라는 키스를 아주 진하고 야하게 할지언정 정국과의 섹스를 머릿속에서 그려본 적은 결단코 없었다. 놀라서 버퍼링이 걸린 지민을 정국이 아주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자꾸 엉덩이 만지잖아요!”

“아니, 정국아. 조금만 조용히….”


영화관 로비에는 사람이 북적였다. 정국의 말에 몇몇 사람이 지민을 힐끔거린다. 정국이 당근을 빼앗긴 토끼 같은 얼굴로 말하는데 지민 본인조차도 스스로가 파렴치한이 된 기분이었는데 남들의 눈엔 어떻겠는가. 지민은 황급히 주변을 살피며 무어라 더 말하려는 정국의 입을 막았다.


“그, 그런 거 아니야!”


정국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지민을 내려다봤다. 지민은 등 뒤로 식은땀이 삐질 나는 것만 같았다. 괜히 심통이 난 정국은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을 막고 있는 지민의 손바닥을 핥았다. 흐갹! 지민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펄쩍 뒤로 물러났다.


“그럼 왜 그랬어요?”


팔짱을 낀 정국이 새침하게 묻는다. 아니, 그냥…귀여우니까…애정 표현이었는데…. 지민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구구절절 오해를 산 행동에 대한 해명을 늘어놓았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정국은 별말 하지 않았지만,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리 같은 입술을 바삐 움직이며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던 지민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왜 변명을 하고 있어야 해?


“그럼 이제 하지 말까?”

“…뭐를요?”

“엉덩이도 토닥이지 말고, 손도 만지지 말고, 볼도 주무르지 말고!”

“아니 왜 얘기가 그렇게 돼요?”

“키스도 하지 말고?”

“하.”


정국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지민은 살짝 움찔했지만, 티 내지 않기 위해 턱을 치켜든 채 지지 않고 정국과 마주 봤다.


“진심이에요?”

“그, 그럼!”


아주 찰나 대답을 망설였지만, 지민은 다음 순간 더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조금 자신이 없긴 했다. 얼마나 됐다고 그사이 익숙해졌는지 정국과 하는 키스는 좋았으니까. 말하자면 괜한 오기였다. 그런 지민을 정국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고 한쪽 볼만 볼록 튀어나온 채로 가만히 바라봤다. 앞머리의 반을 까 놔서 그런지 표정이 더 잘 드러났다.


“자신 있다고요?”

“으, 응….”


형아! 하며 현관으로 마주나오던 정국이 아니었다. 헤어 스타일의 변화 때문인지 평소와 다른 인상의 정국에 지민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아 재빨리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심각하게 지민을 바라보던 정국이 성큼 다가왔다.


“나는 싫어요.”

“응?”

“자신 없어요. 형이랑 닿지 않는 거.”

“…….”

“형한테 따지려는 게 아니에요. 그냥…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어요. 내가 오해한 거란 말이죠?”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은 알겠다며 쉽게 수긍하고선 지민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민은 내밀어 진 손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정국이 예의 토끼 같은 얼굴로 웃는다. 그 얼굴은 여전히 귀여운 정국이었는데 어딘가 조금 더 성숙해진 느낌을 주었다. 지민은 정국과 붙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다 물었다.


“근데 어디서 그런 건 다 배워온 거야?”

“뭐를요?”

“섹스어필이라니….”

“아…. 형, 제가 뭔지 잊었어요?”


아. 지민은 멍청한 탄성을 내뱉었다. 섹스를 위해 제작된 안드로이드에게 대체 뭘 물어보는 거야, 바보같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던 지민의 눈에 헐렁한 트레이닝 바지가 들어왔다.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장까지 봐서 들어가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지민은 정국의 손을 꽉 잡은 채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정국은 어디 가냐는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얌전히 지민을 따라왔다.

 



*     *     *

 



영화관이 있는 쇼핑몰의 남성복 코너를 찾은 지민은 말랑한 눈매를 한껏 날카롭게 만든 채 이리저리 스캔하기 시작했다. 좀처럼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거의 한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마치 정국을 위해 제작된 것 같은 옷이 나타났다. 지민은 망설임 없이 해당 매장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점원이 정국과 지민을 맞이했다. 지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음에 쏙 든 옷을 가리켰다.


“본인이 입으실 건가요?”

“아니요. 동생이 입을 거예요.”


지민은 정국의 등을 툭툭 밀어 앞으로 내보냈다. 정국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지민을 돌아봤다. 지민은 어깨를 으쓱하며 점원을 따라가라는 듯 턱짓했다. 정국은 뒤를 계속 힐끔거리며 이쪽으로 오라는 점원의 뒤를 따랐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매장을 구경하기를 잠시 옷을 갈아입은 정국이 탈의실에서 나왔다. 지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딱 붙는 검은색의 가죽 바지와 흰 무지 티 위에 걸쳐진 재킷이 정말 정국을 위한 맞춤복인 것처럼 잘 어울렸다. 오오. 지민이 감탄하며 어색한 듯 재킷을 만지작거리는 정국에게로 다가갔다.


“잘 어울린다.”

“그래요?”


정국이 왼발을 세워 무릎을 구부린 후 허리를 틀어 뒤를 돌아봤다. 몸에 붙는 옷의 감촉이 어색하긴 했으나 싫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옷을 갈아입은 자신의 모습을 지민이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기에 그걸로 충분했다.

지민은 망설일 것 없이 곧바로 옷을 결제했다. 입고 갈게요. 점원이 다가와 정국의 옷에 붙은 태그를 제거해주었다. 입고 있던 옷이 든 쇼핑백을 손에 든 정국의 남은 손을 붙잡은 지민이 인사를 하고 매장을 나섰다. 딱 달라붙는 가죽 바지에 쌓여 존재감을 과시하는 허벅지를 보고 있으니 섹스어필하는 거냐고 묻던 정국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단언할 수 있었는데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자꾸만 생각이 그런 쪽으로 향했다. 정신 차려, 자꾸 무슨 생각하는 거야. 고개를 빠르게 저어 잡생각을 떨치려고 노력하는데 의지대로 쉽게 되지가 않았다. 말간 얼굴을 한 정국이 머릿속에 나타났다. 형, 정말 저를 그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젖은 정국의 눈동자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상상을 하자 지민은 죄책감에 가슴 한쪽이 아파졌다.

혼자 도리도리 머리를 흔들더니 한숨을 푹푹 쉬는 지민 때문에 정국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지민이 갑자기 도리질을 칠 때 놀라는 것은 처음 한두 번이었고 이제는 저 작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러나 싶은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무슨 생각 해요?”

“어, 어?”


정국의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든 지민은 코앞에 와 있는 정국의 얼굴에 되레 놀라 펄쩍 뛰었다. SS-1090. 아주 만족스러운 성능을 가진 섹스로이드였어요! 인류 최고의 발명품! 언젠가 읽었던 리뷰글이 떠올랐다. 지민은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정국을 잡아끌었다.


“빠, 빨리 가자! 마트 문 닫겠다.”

“알았어요.”


정국은 군말 없이 지민을 따라 발걸음을 빨리 옮겼다. 어디가 아프냐고 정국이 꼬치꼬치 묻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장을 보며 주도적이었던 것은 지민이 아니라 정국이었다. 지민은 멍하니 뒤를 따라 다니고 정국이 필요한 재료들을 카트에 실었다. 옷 때문인지 식빵이나 시리얼을 집어 드는 정국의 뒷모습이 너무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지민은 정국을 두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의 눈을 찌르고 싶다가도 원래 그런 모델인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싶어 떳떳해졌다가를 반복했다.

복잡한 지민의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국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장보기에 열중했다. 한정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았기에 머릿속에서 지민에게 만들어 먹이고 싶은 음식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재료를 쫙 뽑아둔 참이었다. 곧잘 맛있다고 먹는 지민의 반응을 보건대 자신은 요리에도 좀 소질이 있는 모양이었다. 뿌듯한 마음에 불이 붙었다. 욕심으로 이것저것 카트를 채워가던 정국은 문득 지민의 생각이 났다. 너무 자기 맘대로 담은 것 같아 머쓱해져 뒤따라오는 지민을 보기 위해 뒤돌아섰다.


“형.”

“어, 어?”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놀라요?”

“아, 아냐!”


너랑 그렇고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시선을 피하는 지민을 입을 쭉 내밀고 의아하게 보던 정국이 뭐 어떠냐는 마음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넘겼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먹고 싶은 거?”

“내가 해줄게요!”

“그래? 음….”


정국이 해주는 음식이라. 지민은 고민에 빠졌다. 아직도 요리를 시켜보지 않았다는 말에 별종 보듯 하며 그럴 거면 대체 왜 샀냐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재민이 떠오른 지민은 이 기회에 여태 참아왔던 설움을 다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진지한 눈빛으로 정국을 바라봤다. 갑자기 굳은 의지가 보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지민에 살짝 당황한 정국이 어서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파스타 먹을까?”

“파스타요?”

“으응….”

“좋아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정국은 지민이 정말 전문적이고 어려운 요리를 말하면 어쩌나 아주 찰나의 순간 걱정했었다. 강조하지만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떤 걸 말해도 근사하게 해내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있는데 긴장한 거에 비해 제법 간단한 메뉴였다. 정국은 지민의 손을 덥석 잡고 한 손으로 카트를 끌며 파스타 면이 있는 코너로 향했다. 정신없이 끌려가는 와중에 둘러본 주변에서 안드로이드와 함께 장을 보러 온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그중 어떤 안드로이드처럼 이렇게 주인의 손을 잡고 달린다거나 하지 않았다. 지민은 정국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특별한 아이. 어느 날 우연인지 필연인지 자신에게 찾아와준 소중한 아이는 아무래도 아주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     *     *

 



무사히 장까지 보고 났을 때는 제법 거리가 어둑해져 있었다. 추위를 느끼지는 않겠지만, 정국의 옷깃을 단단히 여며준 지민이 거의 파묻히는 수준으로 자신의 목도리도 꽁꽁 둘러맸다. 정국은 그런 지민을 펭귄 같다며 웃기 바빴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선 뭐가 그렇게 좋은지 마주 보고 웃는 두 사람을 지나가던 커플이 힐끔거리며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


쭈뼛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커플을 정국이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쳐다봤다. 지민의 뒤에 서서 상황을 지켜보던 정국이 낯선 커플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불쑥 지민의 앞을 막아섰다. 지민이 뭐하냐는 눈빛으로 정국을 올려다본다. 미간을 찌푸리고 제법 위협적인 표정을 짓는다고 지은 정국의 얼굴이 귀여워서 지민의 얼굴이 말랑하게 풀어져 내린다. 그러나 그 얼굴을 귀엽다고 느낀 것은 지민뿐이었는지 다가오던 커플이 주춤했다.


“무슨 일이세요?”


사랑스럽게 웃던 토끼는 온데간데없고 껄렁껄렁 불량해 보이는 토끼가 튀어나왔다. 정국의 기세에 눌려 주춤 물러섰던 커플이 뒤에서 말랑하게 웃으며 정국을 보고 있는 말을 붙이기 더 쉬워 보이는 지민에게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다, 다른 게 아니고 저희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나 해서….”


지민에게 다가가는 것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는 정국 탓에 남자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서로를 보고 웃는 모양새가 자신들처럼 깨가 떨어지는 사이좋은 연인 같아서 부탁하려고 했던 것인데 잘못 걸린 것 같았다.


“사진이요? 좋아요!”


눈치를 살핀 것이 무색하게 지민은 흔쾌히 커플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어색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하는 커플을 렌즈를 통해 보던 지민이 카메라를 내려놓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좀 더 웃어 보세요! 왜 이렇게 굳으셨어요.”


그야, 뒤에 계신 분이 저희를 죽일 듯이 노려보니까요…. 대답하지 못하는 말 대신 커플은 더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지민이 활짝 웃으라는 듯 손짓을 해 보이자 여자가 굳은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그러자 조금 긴장이 풀리는지 남자도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지민은 커플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담았다. 마주 보며 행복하게 웃는 얼굴과 마주 안은 모습, 그리고 짧게 입을 맞추는 순간까지도.


“아…감사합니다. 갑작스러우셨을 텐데.”

“아니에요. 보기 좋네요. 예쁜 사랑 하세요.”


카메라를 돌려주며 지민이 헤헤 웃었다. 예쁜 커플을 보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고맙다고 다시 인사를 하던 여자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아, 탄성을 내질렀다.


“찍어 드릴까요?”

“네?”

“사실 아까 두 분 마주 보고 웃으시는 게 너무 예뻐서…. 예쁜 사랑 하고 계신 거 같았거든요. 한 장 찍어 드릴게요.”


빨리 빨리요. 여자는 자신들이 찍었던 곳으로 정국과 지민을 끌어 세운 후 지민으로부터 핸드폰을 받아갔다. 엉겁결에 커플 사진을 찍게 되었다. 조금 전 지민이 그랬던 것처럼 여자가 붙으라는 듯 손짓한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가 평범한 연인처럼 보인단 걸까. 지민은 조금 복잡한 마음으로 손을 뒤로 해 정국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잡고 입꼬리를 조금씩 끌어 올렸다. 정국은 담담하게 그런 지민을 내려다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지민을 더 끌어당겼다. 방심하고 서 있던 지민이 정국의 힘에 끌려 가슴팍에 푹 안긴 모양새가 됐다.

어머 어머, 좋아요! 도대체 뭐가 좋단 건지 지민은 당최 알 수 없었지만, 여자는 좋단 말만 반복하며 사진을 찍어댔다. 정국의 가슴에 파묻었던 얼굴을 빼꼼 든 지민이 조심스럽게 카메라 방향을 바라보았다가 정국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완벽하게 빚어진 얼굴이 나른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또 두근거리기 시작하는 가슴 때문에 지민은 빨개진 얼굴을 들킬세라 다시 정국의 가슴에 이마를 비비며 파고들었다. 정국에게도 심장이 뛰었다면 지금 자신처럼 마구 방망이질을 쳤을까. 그게 아니라 어쩌면 지민을 향한 맹목적이고 직설적인 정국의 말과 행동은 목적을 띤 안드로이드가 주인에게 보여야 하는 프로그래밍 된 반응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서글퍼졌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지민을 힐끔 본 정국이 힐끔 커플들 쪽을 바라보더니 몸을 살짝 숙이고 고개를 틀어 땅을 향해 있는 지민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지민의 놀란 눈과 마주치자 씩 웃어 보인다. 백 마디 말보다 확실한 감정이 전해져 왔다. 무슨 생각을 하건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번 입술을 맞댔다 하면 떨어질 줄을 모르는 평소와 달리 입술이 짧게 맞물렸다 떨어졌다.


“너무 잘 어울리세요.”


어느새 다가온 여자가 핸드폰을 다시 내밀었다.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는 지민 대신 정국이 핸드폰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도 했다. 커플이 떠나고 찍힌 사진을 확인하던 정국이 피식 웃으며 아직 가만히 서 있는 지민에게로 다가갔다.


“형, 완전 잘 나왔어요.”

“…….”

“형?”


지민이 온통 빨갛게 물든 얼굴로 정국을 올려다봤다. 눈가도, 둥근 코끝도 볼까지도 다 빨갰다. 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요리조리 피해 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숨는다고 숨어질 문제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의 사용 후기를 읽다 보면 간혹 안드로이드에게 성애(性愛)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을 볼 수 있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대다수 사람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계와 사랑에 빠지는 이상성애라는 비난이 속출했고 안티 안드로이드 정서와 함께 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안드로이드란 그랬다. 자신의 기호에 맞는 외모로 커스텀이 가능하고 인간과 같은 모습이라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들. 불행 중 다행히도 최근 들어 점차 인식은 나아지는 추세였다. 비록 여전히 공공연한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었지만, 숨어들었던 이들이 조금씩 밖으로 나오고 있는 시점이었다. 실제로 근래 성인용 모델이 제작되고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었다.

한창 이상성애라고 손가락질을 받던 시절, 지민은 그 모든 일이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덜컥 겁이 났다. 방관자의 입장에만 바라보던 일이 제 일이 되었을 때.


“정국아.”

“네, 형.”

“좋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에 지민은 부딪히기로 했다. 부정하기엔 이미 늦었다. 손가락을 꼼질 거리며 땅을 바라보고 있는데 덥석 손이 붙잡혔다. 따듯했다. 최근의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체온과 흡사하게 제작된다는 글을 읽었었다. 특히 성인용으로 제작된 안드로이드는 목적이 명확하다 보니 안았을 때 가장 안정적인 체온을 유지한다고 했다. 지민은 정국의 손이 따듯해서 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고개 들어 봐요, 형.”


지민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정국의 눈이 일렁이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눈동자는 도저히 데이터에 의해 만들어진 얼굴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괜한 희망을 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지면서도 마음이라는 게 지푸라기가 있다면 그거라도 잡고 싶은 법이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말이었어요? 울 정도로?”


따뜻한 손이 얼굴을 감싸온다. 지민은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하여 허둥거리는 지민의 볼을 단단히 잡은 정국이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푸흐흐 웃음을 터뜨린다. 왜 웃고 그러냐아…. 불만스러운 지민의 말에도 웃음은 멈출 기미가 없어 보였다.


“형 우니까 왜 더 귀여워요?”

“킁, 뭐래.”

“나도 형 좋아해요. 형이 가르쳐줬잖아요. 이런 게 좋아하는 거라고. 그런데요. 쭉 생각해봤는데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좋아해 말고요….”


좋아한다는 말이 아니야? 지민이 혼란스러운 얼굴로 코를 훌쩍였다. 정국은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 얼굴이었다.


“사랑해.”

“…….”

“사랑해요.”

“…어?”


지민이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눈을 깜빡이고 입을 달싹인다. 정국이 어느새 진지한 얼굴로 지민을 보고 있었다.


“왜 ‘나도.’라고 말 안 해줘요?”

“그, 그러니까….”

“형이 지금 이러는 것도 다 저랑 같은 마음이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또 혼자 착각한 거예요?”

“아니야!”


지민이 다급하게 외쳤다. 정국은 차분한 얼굴로 지민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해?”

“네.”

“나도. 나도 그래.”


정국이 말갛게 웃었다. 지민도 여전히 코끝이 빨간 얼굴로 따라 웃었다. 거짓말처럼 복잡하던 머릿속이 단번에 정리가 되었다.



효단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

SNS 계정으로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15
[국민] 제로 디그리 06
#17
[국민] 제로 디그리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