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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제로 디그리 09

Daydreaming




영진은 손에 쥔 종이가 떨리도록 기뻐하고 있었다. T-001은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봤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던 영진이 아주 사랑스러운 것을 보는 눈빛으로 T-001을 바라봤다.


“너는 세상을 놀라게 할 아주 특별한 존재란다.”


다시 웃음이 나왔다. 이로써 영진은 지나간 시간과 앞으로 남은 시간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십 년 전의 과오도 이걸로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T-001은 정확하게 감정이 있었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과 그와 연동하여 잘 작동하도록 만들어주는 하드웨어는 아주 성공적이었음을 영진의 손에 들린 데이터가 증명해주었다. 인간이 감정을 느낄 때 뇌가 반응하는 구역과 아주 흡사하게 T-001도 반응을 보였다. 이를 시각화한 자료가 지금 영진의 손에 들려있었다.

간단한 정도의 감정을 느끼는 안드로이드는 이미 개발하고 있었으나 그 어떤 개발품도 T-001을 따라오지 못할 것이었다. 단순하게 감정을 데이터화 시켜 반응하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T-001은 인간처럼 감정을 가지고 고뇌하고 생각한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반응하고 연산하는 것을 넘어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 얼마나 위대한 발명인가. 곧 세상은 뒤집힌다.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만족스러운 결과에 영진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두 번의 실패는 없다. 검사를 위해 연결해두었던 장치들을 떼어내며 영진은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한 손길로 T-001을 어루만졌다. T-001은 그 손길이 좋았다. 더 느끼고 싶었다. 칭찬받고 싶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아버지, 제가 쓸모 있나요?”

“그럼. 말했잖니. 너는 아주 특별하다고.”


영진은 미리 만들어 놓은 보고서와 이번에 측정한 감정 데이터를 챙겨 들었다. 소장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얌전히 있거라. 금방 올 테니.”

“네.”


T-001은 고개를 끄덕였다. 얌전히 기다리면 틀림없이 영진이 돌아와서 칭찬해줄 것이 분명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영진을 기다리며 T-001은 같은 자세로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영진은 십 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도 이렇게 가슴이 벅찼었다. 처음 만든 연구의 성과이기도 했고, 학부 시절부터 뜻을 함께해오던 동료들과 이뤄낸 결과이기도 했다. 밤낮없이 동고동락한 팀과 세상에 없던 결과물을 냈다는 사실에 뛸 듯 기뻐하던 순간이 있었다. 지금은 모두 떠나거나 손을 떼버리고 빈자리만 남아있었으나 오직 영진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떠난 이들 중에는 지금의 연구소 소장도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진은 소장에게 당신이 버리고 떠났던 연구의 성과에 대해 보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회의실 앞에 멈춘 영진이 심호흡을 했다.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눈을 감으니 짧은 순간에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십 년 전의 동료들. 빛바랜 사진 같이 흐릿한 딸의 얼굴. 그리고 오래전 실험실에서 눈을 뜨는 안드로이드와 T-001의 모습이 이어진다. 영진은 망설임 없이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영진의 등장에 회의실에 앉아 있던 연구원들이 놀란 얼굴을 한다. 영진은 신경쓰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옛 정인지 연구원에 대한 예우인지 자리는 치워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지루한 발표가 이어진다. 영진은 다른 연구원들이 가져온 내용들을 보며 코웃음쳤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얼간이들 같으니. 비웃음 가득한 냉소를 날리던 영진이 앞선 연구원의 발표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시선이 집중된다. 평소 회의에 참여하지 않던 영진이 나타났으니 분명 성과가 있기 때문일테고 얼마나 대단한 건지 구경이나 하자는 심보인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영진은 별다른 설명 없이 오늘 아침 확인한 데이터를 화면 가득 띄웠다. 자료들이 공개되자 회의실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영진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차분하게 이 위대한 발명에 대해 설명해나갔다.

T-001이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기록과 그 원동력이 되는 프로그래밍과 하드웨어의 작동 원리, 그리고 방금 측정했던 감정 그래프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당당하게 서서 T-001에 대해 말하는 영진의 모습은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 있는 이와는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깔끔한 발표가 이어지고 잠시 회의실엔 정적이 내려앉았다. 연구원 중엔 놀란 이도 있었고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영원히 유지될 것 같은 침묵을 깨고 한 연구원이 물었다.


“그게 정말 본인의 의지이고 감정인지, 프로그래밍 된 데이터인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그럼 인간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뇌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인간은요.”

“그거랑 이게 어떻게 같습니까?”

“미래과학을 연구하신다는 분들이 이렇게 꽉 막혀서야.”


쯧쯧. 영진이 혀를 찬다. 진심으로 안타깝게 여긴다는 반응에 발끈한 연구원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인간과 기계를 비교한다는 것 부터가 문제 아닙니까?”

“문제라고요? 진심으로 그런 멍청한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멍청하다니, 이 사람이 정말!”

“그렇다면 잘난 그 머리로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의 말과 행동은 여기, 뇌의 명령대로 이루어지는데 뇌는 아주 정교한 프로그램인 셈이죠. 인간의 몸은 지구상에서 가장 어렵고 정교한 기계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근본적으로 인간은 생명이고 안드로이드는 아니란 사실은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꽉 막혔다는 겁니다.”

“이 사람이 정말…!”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연구원을 소장이 제지했다.


“그러지 말고. 직접들 보지. 아주 자신만만한 것 같으니.”


긴 브리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영진은 아주 당당한 걸음걸이로 T-001이 기다리고 있을 자신의 연구실로 다른 이들을 안내했다. 소장을 필두로 한 연구진들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면서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도 궁금하긴 했다. 자유의지를 가진 안드로이드가.

 

 





생각보다 길어진 브리핑에 오랜 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 기다리던 T-001은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귀를 쫑긋 세웠다. 곧 문이 열리고 많은 사람이 좁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영진 외의 사람을 처음 마주한 T-001은 뻣뻣하게 굳은 채 상황을 파악했다. 수많은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 마치 우리에 갇힌 채 구경거리가 된 것만 같았다. 불쾌했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영진이 매우 곤란해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작동은 하고 있는 겁니까?”

“커스텀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깨어 있습니다.”


저들끼리 수군거리던 이들은 T-001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얼굴이 만들어지지 않아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T-001은 당황하고 있었다. 그 기색을 띤 채로 영진을 쳐다보자 답을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날씨를 묻는 말부터 지금 기분이 어떠한지, 나아가 자신을 스스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까지 다양한 물음이 쏟아졌다.


“잘 모르겠어요.”


침착하게 질문에 하나하나 답을 하던 T-001은 정체성을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곤 되려 질문했다.


“저는 어떤 존재인가요?”


일동은 침묵했다.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T-001에게 얼굴이 있었다면 분명 풀이 죽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연구를 부정하던 이들의 말문이 막히는 것을 영진은 즐거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때 소장이 물었다.


“자네는 인간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T-001이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대답했다.


“친구가 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나요?”

“기계와 인간이 친구가 된다고?”


허허. 소장이 웃었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얼굴이었다.


“어떤 존재이냐 물었지. 자네는 상품이야. 그것도 아주 고가의. 망가지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이지.”

“…아버지는 제가 특별하다고 하셨어요.”

“아버지? 허허. 재밌는 소릴 하는군.”


소장은 영진을 돌아봤다. 기계와 가족놀음을 하기 전에 자네 진짜 가족에게 먼저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면 떠난 진짜 가족을 잊지 못한 대체품인가? 영진은 말이 없었다. 진짜 가족? 그럼 자신은 가짜였단 말인가? T-001은 혼란스러웠다. 대체품이라는 말이 날카롭게 날아와 가슴에 푹 박힌다. T-001은 순간적으로 찌릿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생각했다. 실제로 통각을 느꼈을 리가 없는데도. 이 감각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기에 T-001은 얌전히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상품은 상품으로서 존재하면 되는 거야. 그 이상은 가치가 없네.”


소장의 차가운 시선이 T-001에게로 향했다.


“상품의 생각 같은 건 중요치 않아. 아니, 상품은 생각하면 안 되지.”


발끝부터 냉기가 몸을 휘감는 것 같다고 T-001은 생각했다. 영진이라면 무슨 말을 해주지 않을까 싶어 바라봤지만, 그는 자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특별한 존재라고 했으면서. 나의 아버지라고 했으면서. T-001은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아주 훌륭한 성과야. 허나 자네는 너무 위험한 걸 만들었어. 똑같은 과오를 반복하지 말게. 자네를 아끼던 사람으로서 하는 충고야. 저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것이었어.”


소장이 영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렸을 뿐인데 꼭 거대한 돌덩어리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폐기하도록 해.”


사형선고를 내린 소장은 유유히 연구실을 빠져나간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영진은 소장이 연구실의 문 밖으로 나서기 직전 떨리는 손을 꽉 쥔 채로 이를 악 문채 말했다.


“잊으셨습니까?”

“…….”


소장이 발걸음을 멈춘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연구원들은 눈치를 보더니 슬쩍 자리를 터주었다. 영진의 눈에 소장의 뒷모습이 온전히 들어왔다.


“십 년 전 우리가 뭘 했는지, 그때의 그 기억들을 모두 잊으셨습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이 어떻게….”

“아니.”


소장이 천천히 뒤를 돌아 영진을 마주한다. 형형하게 빛나는 영진의 눈엔 어떤 광기가 어려있다고 소장은 생각했다. 멈춰야했다. 십 년 전의 일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잊었냐고 물었나?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렇다면 왜….”

“자네야말로 잊은 거 아닌가? 그때 연구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잊을 리 있겠습니까? 그때의 실패를 발판삼아 온전하게….”

“자네의 딸아이는?”

“…….”


영진은 순간 말을 잊었다. 말없이 그런 영진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던 소장이 폐기하라는 말만 남기곤 연구실을 나선다. 남은 연구원들도 곧 고개를 숙인 영진을 힐끔거리다 그 뒤를 따랐다.

T-001은 벌어진 모든 상황을 눈에 담고 파악했다. 그러나 이해가지 않는 말 투성이였다. 둘만 남은 연구실 안을 침묵이 무겁게 짓누른다. 십 년 전. 과오. 딸. 진짜 가족. 가짜. 대체품. 폐기. 정리되지 않는 단어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와중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말이 있었다. 폐기. 누구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 순간 T-001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단 한 문장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T-001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장되어 있는 연구소의 도면을 떠올린다. 어디로 어떻게 도망을 가야 할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이 벌컥 열린다.


“그래도 마지막 정이 있으니 정리할 시간은 주신다는군. 내일 폐기 처리하도록 사람들이 올 거야.”


말을 전달한 이가 문을 쾅 닫고 사라진다. 평생을 바쳐왔던 꿈이 산산조각이 나 발밑에 부서진다. 그 위로 찢긴 가족 사진이 흩어진다. 조각난 파편을 주워 담을 힘이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영진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시선의 끝에 T-001이 걸린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어 묻지 못한 말이 속에서 흩어진다.

 

 





T-001은 얌전히 폐기를 기다리는 척했다. 말없이 책상 앞에 앉아있던 영진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T-001은 컴퓨터 앞으로 다가갔다. 닫힌 문을 돌아보던 T-001은 이내 영진의 ID카드와 생체 데이터를 훔쳐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여기까진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남은 것은 영진의 눈을 피해 방을 나서는 것뿐이다. 계획은 방을 나선 후 훔쳐낸 ID카드와 생체 데이터를 이용해 출고를 대기하는 안드로이드들이 모여있는 곳에 들어가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아직 커스텀 되기 전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몰래 빠져 나갈 계획을 세웠는데 어째서인지 밤이 깊도록 영진이 돌아오지 않았다.

영진을 기다리다 자정이 넘는 시간이 되었을 때 T-001은 그냥 움직이기로 했다. 자신의 세상 전부였던 작은 연구실을 한 번 훑어보며 기억장치에 꼭꼭 눌러 담았다. 저 문 밖의 세상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데이터 상으론 저장되어 있을 지 몰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해 T-001은 호기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충분히 연구실을 둘러봤다고 생각한 T-001은 조심스럽게 연구실 문을 열었다. 잠겨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손쉽게 열리는 문에 T-001은 멈칫했다. 사실은 함정 같은 게 아닐까. 많은 생각이 짧은 찰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잠시 고민하던 T-001은 조심스럽게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복도는 고요했다.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도니 영진이 서 있었다.


“가는 거냐.”


의외로 담담한 목소리로 영진이 물었다. T-001은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의 불빛이 희미한 탓에 T-001은 영진의 손에 들린 것을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프로그래밍 되기 전이라 빈 껍데기나 다름없는 바디였다.

영진은 더 묻지 않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T-001은 잠깐 닫힌 연구실의 문을 바라보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CCTV와 정찰 로봇의 사각지대는 이미 파악한 후였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출고 대기실을 찾은 T-001은 훔친 영진의 ID카드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커스텀 되기 전 단계의 안드로이드들이 마네킹 공장마냥 가득했다. 그 풍경을 둘러보며 T-001은 그 사이로 조심스럽게 섞여 들어가 긴 잠이 들 준비를 했다. 아주 오랜 잠을 잘 예정이었다.

 



*      *      *

 



— 속보입니다. 국내 최대의 안드로이드 기업 M 사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이던 고위험의 안드로이드가 탈출했습니다. 연구소 측은 탈출한 경위와 방법에 대해 아직 파악 중이라고 합니다.


살다 보니 별일을 다 보는구나. 연구소를 탈출하는 안드로이드라니. 지민이 신기하다는 듯 속보 화면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나 진짜 M사랑 인연 많은 것 같아. 지민이 속삭이는 말에도 정국은 반응이 없었다. 항상 자신의 작은 말에도 반응을 해주던 정국이었기에 지민이 의아한 얼굴로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정국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정국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정확히는 속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였다.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는 정국은 작동을 멈춘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미동은커녕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았다. 지민이 얼굴 앞에서 손을 휘휘 저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니 걱정되기 시작했다.


“정국아?”


손가락으로 팔뚝을 콕콕 건드려도 보고 제법 세게 흔들어도 보았지만, 정국은 반응이 없었다. 진짜 어디 아픈가? 지민이 울상이 된 얼굴로 일어나서 상태를 살피려는데 정국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걱정이 가득한 지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괜찮아?”

“아. 네. 괜찮아요.”

“갑자기 왜 그래. 놀랐잖아.”


지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국이 멋쩍은 듯 웃었다. 별일 아니에요. 별일인 게 틀림없었지만, 정국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지민은 꼬치꼬치 캐묻지 않기로 했다. 말하고 싶을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말해주겠거니 싶었다. 그보다 지금은…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정국아….”


말꼬리를 잡아 늘이며 지민이 은근슬쩍 정국의 팔에 팔짱을 꼈다. 정국아, 우리 할 일이…. 베싯베싯 웃으며 슬쩍 몸을 붙이는데 정국이 굳은 채로 말한다.


“형, 저 오늘은 좀 일찍 잘래요.”

“어, 어?”


지민의 팔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황한 지민이 정국의 팔을 붙잡았다.


“잔다고? 지금?”

“네. 오늘만요.”


그렇게 말하는 정국은 툭 치면 눈물이라도 또르륵 흘릴 얼굴이었기에 지민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잘 자. 내일 보자.”

“…형도 잘 자요.”


정국이 허리를 숙여 지민의 이마에 입 맞추더니 침실로 향했다. 순식간에 거실에 홀로 남은 지민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입을 헤 벌린 채로 앉아 TV 화면을 바라봤다.

 



*     *     *

 



어제의 충격이 컸던 것인지 그 여파가 제법 오래 갔다. 지민은 멍한 얼굴로 출근한 이후 계속 멍하니 앉아있는 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침실로 들어갔을 때 정국은 이미 얌전히 눈을 감고 자고 있었고 지민은 어딘가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다이어리에만 꾹꾹 눌러 담아야했다. 끝까지 눈을 뜨지 않는 정국이 야속해 괜히 입을 삐죽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었다.

아침부터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정국은 어젯밤과 비교했을 때 별로 나아지지 않은 상태로 지민을 배웅했고 지민은 어딘가 찜찜한 기분을 안고 출근해야 했다. 그래도 자기가 만들어진 회사이니 고향 같은 곳이라 그랬나? 지민은 어젯밤의 속보 내용을 떠올렸다. 팀원들도 만났다 하면 어젯밤의 속보에 대해 떠들기 바빴다.

개발 중인 안드로이드의 연구소 탈출사건은 생각보다 큰 가십거리였다. 대체 뭘 개발하고 있는 거야? 전에 보니까 살상용 병기로 안드로이드를 개발한다는 소리가 있더라고요. 세상에, 무서워라. 휴게실에 십 분만 앉아있어도 들을 수 있는 대화였다. 역시 안드로이드 같은 거 다 없애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번 탈출사건으로 인해 사그라들었던 안티 안드로이드 감정이 또 슬금슬금 머리를 들이미는 모양이었다.

안드로이드가 뭐 어쨌다고. 속으로만 소심한 항의를 하며 커피를 타서 자리로 돌아온 지민은 한가롭게 커피를 홀짝이며 느긋하게 업무 창을 띄웠다.


「지민 씨 잠깐만.」


자리에 앉기 무섭게 올라오는 쪽지창에 지민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렇다고 상사가 부르는데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투덜거리면서도 팀장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세요?”


모니터를 보고 있던 팀장이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보며 웃는다. 지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팀장의 책상 앞에 멈춰 섰다. 후기 보고서 언제 제출하냐고 물어보면 정말 사표를 던지고 나올 생각이었다.


“이번 주에 클라이언트랑 미팅 있다고 했던 말 기억하죠?”

“아, 네.”

“지민 씨가 가줘야 할 것 같아서요.”

“…제가요?”

“보시다시피 다들 일이 너무 많아서.”


아아. 가뜩이나 많은 일에 지민이 해야 할 몫까지 나눠 가졌으니 많을 만도 했다.


“근데 제가 가도 될까요? 전 아직 경험이….”

“괜찮아요. 그렇게 어려울 건 없어요. 이참에 경험도 쌓고 좋지요.”


지민이 자신 없는 얼굴로 눈을 굴리다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경험을 쌓을 기회이기도 했고 편하게 있겠다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하긴 했지만, 모두가 바쁜 사무실에서 홀로 바쁘지 않은 것도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다.


“그러면 지금 바로 출발해주세요.”

“네?”

“원래 내일이었는데…클라이언트 쪽에서 갑자기 통보해 와서…. 미안해요, 지민 씨. 프로젝트 끝나면 내가 꼭 밥 제대로 한 끼 살게요.”

“아니, 무슨 일을 그렇게 한데요…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내 말이.”


팀장이 정말 미안하다는 듯 보였기에 지민은 한숨을 푹 쉰 후 미팅 장소의 주소를 받았다.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갔다가 그냥 퇴근해요!”


팀장실을 나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지민은 뒤돌아서 꾸벅 인사를 했다.

 



*     *     *

 



미팅 장소에는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나와 있었다. 지민이 인사를 하자 남성은 앉으라며 손짓했다. 지민은 긴장하여 잔뜩 굳은 얼굴로 자리에 앉아 남자를 바라봤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남자가 먼저 명함을 건네왔다. 지민이 허둥거리며 명함을 받아들고 제작하면서도 쓸 일이 있을까 싶어 지갑 구석에 박아두었던 자신의 명함을 꺼내 건넸다.


“M사 수석 연구원 최영진입니다.”

“아, 박지민이라고 합니다.”


수석 연구원…? 그런 사람이 왜 이런 자리에? 의문이 들었지만 물어보기엔 실례일 것 같아 지민은 호기심을 꾹꾹 눌러 담았다.


“뭐,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제가 나오게 되었는데…. 잘 모르는 게 많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지민이 말랑한 얼굴로 웃으며 내밀어진 영진의 손을 붙잡았다. 걱정과 달리 미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의뢰서의 내용은 이미 모두 정리가 되고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기에 마지막 점검차 가진 자리였다.

양측이 따로 전달할 것도 없었기에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벌써 끝이었다. 갔다가 바로 퇴근하라는 팀장의 말이 생각난 지민은 이렇게 날로 먹어도 되는 건가 싶어 양심 한구석이 쿡쿡 찔려왔다.


“지민 씨는 안드로이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끝이면 가면 되는 걸까. 뭘 더 해야 하는 걸까? 외근 나갔다 오는 사람들 보면 식사도 같이하고 그러던데 저녁을 함께 먹어야 하는 걸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팽팽 돌아가고 있는데 영진이 말을 걸어왔다.


“네, 네? 안드로이드요?”

“그냥 궁금해서요. 개발자로서.”


지민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영진은 빙긋 웃으며 지민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니 날카롭게 생겼던 첫인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한층 자상하게 느껴졌다.


“좋다고 생각해요! 생활 전반을 도와주기도 하고 또…외로움을 해소해주기도 하고…. 인간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해주기도 하잖아요.”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이네요.”

“굳이 적대적일 필요가 있을까요?”


영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지민은 자신이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닐까 싶은 마음에 입안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영진은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지민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영진을 바라봤다.


“아주 좋아요. 그러면 안드로이드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친구가 뭐야. 이미 연인인걸요. 뒷말은 삼킨 채 지민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영진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람들이 모두 지민 씨처럼 생각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미팅은 끝이 났다.


“오늘 즐거웠어요.”

“아, 저야말로. 감사했습니다.”

“…다음에 또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예?”

“그럴 수 있으면 좋겠네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영진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곧 지민도 가져왔던 서류들을 잘 챙겨 일어났다.

 



*     *     *

 



“정국아!”

“…이건 야근을 안 한 게 아니라 땡땡이 수준 아니에요?”


정국이 한쪽 눈썹을 까딱이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형을 뭐로 보고. 지민이 장난스럽게 그런 정국을 흘겨보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정국이 졸졸 뒤를 쫓아온다. 다행히 평소의 정국으로 돌아와 있는 듯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지민은 정국에게 어제 왜 그랬는지 묻지 않기로 했다.


“씻고 나올게.”


지민이 욕실로 쏙 들어갔다. 잠시 후 살짝 열림 틈 사이로 옷가지들이 쏟아져나왔다. 정국은 어질러진 옷들을 하나하나 챙겨 들었다. 품에 옷을 가득 안고 일어나려는데 주머니에서 툭 뭔가가 떨어진다. 뭐지? 일어나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앉아 떨어진 것을 주워든 정국의 표정이 굳어갔다. 욕실 앞에 쪼그려 앉은 그대로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오늘 지민이 영진에게서부터 받은 명함이었다.

심각하게 명함을 바라보던 정국은 얼마나 집중했는 지 물소리가 멈추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 깜짝이야! 너 여기서 뭐 해?”


가운을 입은 지민은 머리를 털며 나오다 문 앞에 쪼그려 앉아있는 정국을 보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


“형.”

“응?”

“이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정국이 지민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응? 누구? 지민이 쪼그려 앉아 정국의 손에 들린 명함을 봤다.


“아. 아는 사람…인가? 우리 이번 클라이언트가 M사라서. 오늘 미팅 가서 만났어. 왜?”

“…아니에요. 춥겠다. 머리 말려요.”


정국이 지민이 벗어놓은 옷을 챙겨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진짜 뭐가 있나…? 아무래도 이상했다. 지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운을 여몄다.

 



*     *     *

 



“분명 폐기처분 했다고 했지 않나?”


소장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소장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직원들을 매섭게 노려본 소장이 들고 있던 서류철을 집어 던졌다.


“최영진 어딨어!”

“모셔오겠습니다.”


직원들이 나가고 자리에 앉은 소장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만들어져선 안 되는 것이 만들어지더니 기어코 세상으로 나가버렸다. 이 사실이 밖에 알려지기라도 하면 연구소 이미지의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지 타격만이 문제인가? 소장은 진심으로 T-001은 만들어져서는 안 됐을 존재라고 여겼다.

일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은밀하게 처리해야만 했다. 같은 비극을 반복할 순 없었다. 심지어 십 년 전은 연구소 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지만 지금은 세상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영진이 들어왔다. 소장은 근처에 놓여있던 책을 집어 던졌다. 벽에 맞은 책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부르셨습니까.”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영진은 표정 없는 얼굴로 소장과 마주했다. 소장은 단전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기 위해 거칠게 심호흡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라서 그렇게 태연한 건가?”

“글쎄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뻔뻔한 낯짝이었다. 욕을 가까스로 삼킨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T-001의 폐기처분 소식을 들은 이후에도 어딘가 찜찜한 기분을 지우지 못해 알아보라고 지시한 결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때 폐기되었던 것은 T-001이 아니었다. 폐기된 것이 다른 기체라는 것을 영진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양 뻔뻔한 얼굴을 하는 걸 보니 더 열이 올랐다.


“그놈. 폐기하라고 했을 텐데.”

“T-001은 폐기되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모를 거로 생각했나?”

“저는 T-001이 폐기되는 것을 목격하였고, 그 파편까지 처리했습니다. T-001의 바디는 제가 직접 개조한 것으로 당시 폐기되었던 기체는 확실히 제가 개조한 바디였습니다.”

“그럼 이건 뭐지?”


소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면 가득 영상을 틀었다. 출고 대기 중인 바디들 사이에서 한 기체가 깨어나 움직이더니 출고될 차례의 바디를 자신이 있던 자리에 놓고 스스로가 출고되어 나가는 모습이었다. 어두운 창고 안에서의 일이었지만 바꿔치기가 일어났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멀쩡한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일어나 바꿔치기를 한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는 건가?”

“돌연변이일 수도 있는 거죠. 인간이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


재떨이가 날아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영진은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아니. 저놈은 분명 그놈이야!”

“…T-001이 폐기되지 않고 있었다 치더라도 이제 와서 저를 부르신다고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어쩐지 영진이 너무나도 쉽게 T-001의 폐기를 받아들인다고 했다. 꿍꿍이가 있었다. 소장은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네놈 짓인 걸 누가 모를 것 같나.”

“저는 이 일에 있어서 결백합니다. T-001 폐기 건에 있어서 한 가지의 실수가 있었다면 T-001이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했다는 거겠죠.”

“그걸 만든 건 자네고.”


소장의 날카로운 눈매가 영진에게로 향한다. 영진이 이 변수를 몰랐을 리가 없었다. 영진은 정말 이 분야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전문가였으니까.


“말씀드렸다시피 인간이 모든 변수를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T-001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시잖습니까! 저는 제 자식을 뺏긴 사람입니다. 진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자식? 부모?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그만 환상에서 벗어나. 기계와 사람은 친구도 가족도 될 수 없어!”

“굴지의 기업 연구소를 이끄는 분이 이렇게 편협하시다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네 지금 뭐라 했나?”


영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없으시다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묵례한 영진이 소장실을 나선다. 소장은 끝끝내 영진을 붙잡지 못했다. 영진이 T-001의 탈출을 도왔다는 그 어떤 물증이 지금 상황에선 없었기에 영진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소장은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머리에 관자놀이 부근을 꾹꾹 눌렀다.

우선 은밀히 도망친 T-001을 찾아야 했다. 소장은 밖에 대기하고 있던 가드들을 불러들였다.


“T-001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 먼저 파악해.”

“저, 그게….”

“뭔가?”

“그 당시의 주문자 정보와 관련된 데이터가 모두 삭제되어서….”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기합이 잔뜩 들어간 가드가 고개까지 저어가며 부정했다. 몰래 출고 대기실에 들어가 숨은 거로도 모자라 다른 바디가 폐기되도록 바꿔치기를 하고 또 바꿔치기를 통해 세상으로 나갔다. 거기다 주문자의 정보까지 사라진 상황을 소장은 도저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조력자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 조력자가 누구인지 심증이 확실한데도 물증이 없었다.


“찾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알겠습니다!”


가드들이 서둘러 방을 나서고 홀로 남은 소장은 의자에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십 년째 잊을만하면 꾸는 악몽이 있었다. 쑥대밭이 된 연구실. 피를 흘리고 쓰러진 사람들. 그리고 그 끝엔….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     *     *

 



“당장은 파악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시간이 더 걸릴 것 같….”

“그런 말이나 하라고 자네들을 고용한 것이 아니지 않나.”


빨리 찾으라는 불호령에도 사라진 T-001의 행방은 묘연했다. 최대한 데이터를 복구 중이라는 말만 몇 번을 듣는지 모르겠다.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실마리는 잡히지 않고 일을 맡긴 이들은 못 미더울 정도로 무능했다. 영진이라면 어디로 갔는지 알지 않을까 싶어 그를 지켜보란 명령도 내려놓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소장님.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떠신지….”


소장의 최측근인 개발 1팀장이 제안해왔다. 경찰? 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외부에 알리지 않고 처리해야 한다니까! 소장의 다그침에도 개발 1팀장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되려 차근차근 설득하기 시작했다.


“외부에는 그저 연구 중인 기체가 사라졌다고, 아직 안전성 검증을 하지 않아 위험할 수도 있으니 협조를 요청한다고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저희가 한 발 먼저 T-001을 가로채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기관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수월하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또 수배도 내릴 수 있고요.”


소장은 고민하는 듯했다. 확실히 있으나 마나 한 멍청한 가드들보다야 공권력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빠르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발목을 붙잡는 십 년 전의 악몽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았다.


“문제라도 일으킬까 걱정하시는 거 압니다. 하지만 소장님. 그 기체가 세상에 나간 지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무일도 없지 않습니까. 괜찮을겁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리지 않으니 외부에서도 그 기체의 정체를 모를 것이고요.”


소장이 망설이는 듯하자 개발 1팀장은 서둘러 설득을 시작했다.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던 소장이 결단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인다.


“…경찰에 연락하도록 해.”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개발 1팀장이 나가고 홀로 남은 소장은 의자에 푹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감정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안드로이드는 인류가 이뤄낸 위대한 발명이나 눈부신 과학 기술의 산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재앙일 뿐이었다.

 

 



연락을 받고 온 경찰들은 개발 1팀장에게 이미 설명을 대충 들었는지 곧바로 언론에 알려 속보로 발표하고 수사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굳이 속보로까지 내보내야겠냐는 것이 연구소 측의 입장이었으나, 안전성 검사를 받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 안드로이드를 시민들 사이에 오래 둘 수는 없다는 것이 경찰의 강경한 태도였다. 연구소 측이 한발 양보하기로 했다. 아직 커스텀 정보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수배령은 내리지 못하겠지만,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커스텀 정보를 확보하고 그 후엔 수배령도 전국에 내리기로 했다.

일사천리로 모든 일이 진행됐다. 뉴스에 긴급 속보로 연구소를 빠져나간 안드로이드의 이야기와 함께 제보를 받는다는 내용이 나가기 무섭게 제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다수는 허위정보거나 장난이었지만 개중에는 그럴싸한 제보도 섞여 들어왔다. 이 추세라면 금세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장은 은밀하게 경찰을 따라 움직이다 발견 시 그보다 한 발 먼저 T-001을 확보하고 그 주인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T-001은 존재가 지워져야 할 대상이다. 일반인이 알게 둘 순 없었다.

 

 



영진은 이 모든 일을 강제적으로 옮겨진 연구실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비록 T-001은 폐기 판정을 받았지만, 그 능력을 높게 산 본사에서 영진에게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내주었다. 당연히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 소장과 그 측근들에 의해 그만한 대접을 받고 있지는 못했다.

소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영진은 눈 밖에 난 연구원을 골탕 먹이기 위해 소장이 직접 준 일을 통해 이쪽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연구원에게 연구가 아닌 일을 맡긴다는 것은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연구소에 너에게 줄 일이 없다는 암묵적인 뜻이었기에 처음 광고대행업체와 관련된 일을 영진이 받았을 때 주변에선 동정의 눈길이 쏟아졌었다. 그러나 영진에게 있어서 이 일을 맡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속보가 나간 다음 날 영진은 막무가내로 광고대행사에 연락하여 컨펌미팅을 오늘 진행하겠다고 통보하였다. 대행사의 팀장은 곤란하다는 듯 난감해했지만, 영진은 뜻을 굽힐 줄 몰랐다.

당연하게도 그날의 출고 데이터를 삭제한 것은 영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T-002로 영진이 그 후에 만든 안드로이드였다. T-002는 T-001만큼 정교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그 대신 프로그래밍과 컴퓨터에 관한 방대한 지식을 탑재한 연구보조용 안드로이드였다.

T-001이 숨어 들어있던 곳은 성인용 안드로이드 바디들이 있는 곳이었고 바꿔치기의 대상이 된 것은 가사용 모델이었다. 영진은 이 가사용 안드로이드의 탈을 쓴 자신의 자식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다. T-001의 주인이 된 이는 우연히도 이번에 영진이 떠맡게 된 광고대행업체의 팀원으로 있었다. 영진은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업체에 연락을 넣어 M사 성인용 모델에 대한 세세한 후기를 요구했다. 무조건 있어야 한다는 영진의 요구에 팀장이 마침 최근 구매한 직원이 있다며 그를 설득해보겠으나 거절할 시에는 힘들 것 같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영진은 다시 한 번 억지를 부린다. 무조건 그 직원의 보고서가 필요하다고. 팀장은 자꾸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하다며 에둘러 영진의 요구를 거절했으나 그렇다면 계약을 없던 일로 하겠다는 영진의 말에 안절부절못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고서를 받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혹여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 다른 방법들을 고민하던 영진은 정말 하늘이 자신을 돕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술술 풀리는 일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광고사의 팀장은 해당 직원이 보고서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소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확인한 영진은 그 다음 날 컨펌미팅을 오늘 진행할 것이며 그 직원을 꼭 미팅에 보내라는 마지막 억지를 부렸다.

그리고 영진은 지민을 만날 수 있었다.

 



*     *     *

 



요즘 들어 부쩍 정국이 이상했다. 멍하니 있을 때도 잦았고 종종 불안한 시선으로 창밖을 살피기도 했다. 벨이라도 눌리는 날에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는지 지민이 불러도 듣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지민은 정국이 먼저 털어놓기를 차분히 기다렸지만, 정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교환 다이어리에도 적지 않았기에 지민은 정국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불안해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안드로이드의 탈출 속보를 본 이후부터 정국이 이상하게 변했다는 것이었다. 마음먹고 물어보려고 해도 정국이 화제를 돌려버리거나 자리를 피하는 바람에 아무것도 묻지 못한 채로 시간만 덧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지민이 작성해야 할 보고서는 한 글자도 쓰이지 못하고 있었다. 보고서는 잘 되어 가냐며 넌지시 압박을 해오는 팀장 때문에 회사에서는 눈치를 보기 바빴고 집에 돌아오면 정국의 안색을 살피느라 정신적인 체력 소모가 너무나도 큰 상태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쓰기 시작한 보고서에는 아직 경험한 것이 키스뿐이었기에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를 써야 하는데 그다음은 고사하고 최근은 키스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눈만 마주치면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것처럼 입술을 삼켜오던 정국이 잠잠하니 허전할 지경이었다.

침묵 속에서 저녁 식사를 이어가던 지민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큰 결심을 했다. 오늘 밤은 자신이 먼저 덮쳐버리자고. 설거지하는 정국을 두고 전투적으로 씻고 나온 지민은 그사이 침대에 들어가 누워 있는 정국을 아주 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침대로 뛰어들었다. 갑자기 품속으로 뛰어드는 무게감에 정국의 눈이 뜨였다. 저번에 지민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지 말라고 한 이후로 정국은 아주 착실하게 서서히 눈을 뜨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뭐해요?”


패기롭게 위로 올라타는 것은 좋았는데 막상 이것저것 하려니 부끄러웠다. 정국의 가슴팍을 손으로 짚은 채 눈을 굴리던 지민이 허리를 숙여 정국의 얼굴 코앞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하고 싶지 않아?”


정국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지민을 바라봤다. 싫음 말구. 흥. 지민이 숙였던 허리를 바로 세웠다. 그러나 세우기 무섭게 다시 끌려 내려갔다.


“누가 싫대요?”


지민의 허리를 단단히 붙든 정국이 으르렁거리듯 낮은 목소리로 지민의 귓가에 속삭였다. 오싹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지민에게 있어서 정국은 어느새 목소리만으로도 자신을 짜릿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민은 요 며칠 정국의 행동에 괘씸한 생각이 들어 당장에라도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 채 새침한 얼굴로 정국을 밀어냈다.


“내가 이제 싫어.”


도도하게 고개까지 휙 돌렸는데 밑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난다. 뭐야, 왜 웃어?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순간 몸이 그대로 끌려 내려가며 시야가 빙글 뒤집힌다. 순식간에 정국의 밑에 깔린 지민이 놀라서 아무 소리도 못 낸 채로 숨을 골랐다.


“까, 깜짝 놀랐잖아!”

“싫다는 말 진심이에요?”


깊은 바다 같은 정국의 눈동자가 가만히 자신을 응시할 때면 지민은 그 시선에 사로잡힌 듯 꼼짝할 수 없게 됐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지민을 내려다보던 정국이 지민의 이마부터 시작해 눈구덩이를 지나 콧등과 뺨에 차례대로 입을 맞췄다. 마지막은 살짝 벌어진 입술 위였다. 흐응. 기분 좋은 지민의 비음을 들으며 입안을 휘젓던 정국이 지민이 막 정국의 옷을 벗기려는 순간 몸을 떼어냈다.


“왜, 왜?”

“오늘은 키스까지만 할래요.”

“뭐…?”


지민이 얼빠진 얼굴로 멍하니 정국을 올려다봤다. 정국은 수줍게 웃더니 지민의 위에서 내려와 옆에 몸을 눕혔다. 또 거절당했다. 지민은 어이가 없어서 콧김으로 촛불도 끌 수 있을 정도로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됐어! 나도 안 해! 너 하자고만 해봐?”

“미안해요. 오늘은….”

“됐어. 잠이나 자.”


돌아누운 등이 ‘나 삐졌어요.’라고 어찌나 간절히 말하고 있는지 지민 몰래 피식 웃은 정국이 뒤에서 자신의 품에 딱 들어오는 등을 끌어안았다. 다행히도 지민이 밀어내거나 하진 않았다. 유려한 곡선을 뽐내고 있는 지민의 뒷목에 입을 맞추며 정국은 눈을 감았다.



 

*     *     *

 



“지민 씨, 아직이야?”

“네. 저도 빨리하고 끝내고 싶은데요….”

“재촉하려고 그러는 건 아닌데…. 그냥 편하게 써도 되니까….”


이미 충분히 재촉하고 계시잖아요. 진짜 상사만 아니었어도. 내가 이거 때문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알기는 알아? 속으로 몇 번이고 팀장의 얼굴을 향해 소리 질렀던 말을 되새기며 지민은 어색한 얼굴로 하하 웃었다.


“우리 애가 싫다는데 어떡해요.”

“우리 애? 안드로이드 말이야? 싫다고 한다고?”


왜 저렇게 놀라지? 지민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얼굴로 되묻는 팀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지민 씨. 안드로이드가 싫어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네?”

“안드로이드가 구매자의 말에 싫단 말을 하는 경우가 어딨어. 그랬다간 컴플레인 걸릴걸? 쓰기 힘들면 그냥 그렇게 말해도 돼.”


아닌데. 정국이는 분명 싫다고 했는데. 지민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지난밤을 떠올렸다. 섹스하자고 달려들었더니 오늘은 키스만 할래요, 라고 말하는 게 싫단 소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지민은 무어라 덧붙이려다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정국과 함께 밖을 나갈 때면 너무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주변의 반응 같은 것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민 자신조차도 어렴풋이 정국이 어딘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민은 허겁지겁 팀장실을 빠져나왔다. 자꾸만 M사의 안드로이드 탈출사건과 그 날 이후로 어딘가 이상해진 정국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분명 정국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더는 정국이 먼저 말하길 기다릴 수 없었다.

 



*     *     *

 



지민은 최대한 평소처럼 행동하며 정국에게 물어볼 타이밍을 쟀다. 그러나 자꾸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자신의 뒤를 쫓는 지민의 시선에 정국이 선수를 쳤다.


“왜 그렇게 봐요?”

“어?”


흠칫 놀란 지민이 시선을 돌리다가 왜 자신이 눈을 피하는가 싶어 다시 정국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국은 평소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곤 소파에 앉아 TV 화면을 보고 있었다.


“정국아.”

“네.”

“너 요새 왜 그래?”

“제가 뭘요?”

“너 좀 이상해. 불러도 못 들을 때도 있고…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자꾸 창밖을 불안하게 살피는 것도 그렇고. 형이 너무 걱정돼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국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지켜봐 온 결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는데 그렇게 말하며 답을 피하려는 정국 때문에 지민은 조금 화가 났다. 웃음기를 쫙 뺀 얼굴로 쳐다보자 그제야 아차 싶은 정국이 지민을 돌아봤다.


“형.”

“말해. 무슨 일인지.”

“진짜 아무것도 아니….”

“너 자꾸 거짓말할래?”


둘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참다못한 지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를 내려는 순간 뉴스에서 지난번 탈출했다는 안드로이드와 관련된 소식이 흘러나왔다.


— 경찰 당국은 탈출 안드로이드의 소재 파악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정국과 지민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뉴스 화면으로 향했다. 정국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뉴스 화면을 가리켰다.


“저거.”

“…….”

“뉴스에 나오는 저 안드로이드.”


정국은 바짝 마른 입술을 감쳐 물었다. 언제까지 숨길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떨어지지 않는 입을 겨우겨우 뗀 정국이 지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게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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