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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제로 디그리 11

all of my life



“아직도 못 찾았나.”


서늘한 목소리였다. 소장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눌렀다. 처음 뉴스가 나간 이후로 개발 중이라던 안드로이드에 대해 자세히 공개하라는 반응이 거세져 곤란한 점이 한둘이 아녔으나 참고 기다리면 될 거라는 개발 1팀장의 말을 듣고 기다렸더니 거짓말처럼 거셌던 여론도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M사의 주가도 크게 오른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 소장은 초조해졌다. T-001을 빨리 찾아야 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는 개발 1팀장의 말에 소장이 화를 내려는 순간 소장실 문이 급하게 열렸다.


“찾았습니다!”


땀을 흘리며 뛰어들어온 직원이 방금 복원해낸 T-001의 출고 데이터를 소장에게 건넸다. 소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데이터를 훑어봤다.


“지금 어디 있나?”

“그게 근데…. 이미 사라진 뒤였습니다.”

“뭐?”


충혈된 소장의 눈에 직원이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푹 숙인다. 이미 눈치를 채고 도망쳤는지 집엔 아무도 없고 구매자도 무단결근 중이라고…. 직원이 소장의 눈치를 살피며 보고를 이어갔다. 책상이라도 엎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소장은 계속하라는 듯 손짓했다.


“일단 경찰 측에서는 확인된 커스텀 정보를 바탕으로 수배를 내릴 거라고 하니까 금방 잡힐 겁니다.”

“금방 잡히는 게 문제가 아니지. 먼저 찾아서 데려와. 구매자는 조용히 처리하고.”

“네, 알고 있습니다! 저희 쪽에서도 사람을 풀었고 경찰 쪽에도 붙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니 깔끔하게 처리해.”

“옙!”


우렁차게 대답한 직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소장실을 나섰다.


“그래도 이제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군요.”

“그랬으면 좋겠군. 자네도 나가 봐. 최영진 잘 지켜보고.”

“네, 알겠습니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한 영진이 마음에 걸렸다. T-001을 폐기하던 때도 그랬다. 영진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었다.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십 년을 포기 않고 실패와 좌절뿐인 길을 묵묵히 걸었던 사람이었다. 하나둘 주변 인물들이 떠나가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아랑곳하지 않던 사람이란 걸 알았기에 더더욱 영진이 가만히 있는 이 상황이 불안했다. 게다가 T-001은 영진에게 있어 단순한 연구의 결과물이 아닐 것이다. 십 년 전의 일로 그가 잃었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영진이 T-001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사람까지 붙여놓았지만 다 소용없었다. 영진은 자신의 연구실을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오가는 곳이라고 해봤자 영진에게 수석 연구원의 자리를 내준 본사뿐이었다.

소장은 의자에 푹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십 년 전만 해도 소장 또한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연구팀의 팀원이었다. 물론 그 팀엔 영진도 함께였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 소장이 책상의 가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뒤집힌 액자 하나만이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소장은 액자를 집어 들었다. 그대로 책상 위로 가져오긴 했으나 차마 뒤집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액자의 테두리만 한참을 만지작거리던 소장이 깊은 심호흡과 함께 천천히 액자를 뒤집었다.

빛바랜 사진엔 지금보다 젊은 소장과 영진을 비롯한 연구팀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소장은 사진의 바깥부터 팀원들의 위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마치 그들을 추억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한 명 한 명 되짚어 보느라 시간이 제법 걸렸다. 사진의 가운데엔 소장과 영진, 그리고 다른 연구원 한 명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한 채로 웃고 있었다. 그 밑으론 어린 여자아이와 그 옆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앉은 무표정의 남성이 있었다. 소장은 여자아이와 남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자아이 옆의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가슴에 열의 하나만 품고 무모하게 뛰어들었던 연구의 결과물이자 소장이 처음으로 개발한 안드로이드였다.


“ZERO….”


괴로움을 읊조리듯 그 이름을 토해냈다. 정식 이름은 T-000 혹은 T-ZERO라는 이름의 안드로이드는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 최초성공작이라고 여겨졌었다. 오작동을 일으키기 전까진 그랬다.

괴로운 기억이 떠올라 소장은 가쁜 숨을 내쉬며 액자에서 시선을 돌렸다. 천장을 올려다보며 소장은 생각했다. T-001을 절대 세상에 내놓을 수 없다고. 동시에 굳게 다짐한다. 만들어져선 안 됐을 그것을 반드시 폐기하겠다고.

그러기 위해선 영진이 무슨 꿍꿍이인지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ZERO의 오작동 이후 연구팀은 자연스레 해산되었다. 당연한 말이었다. 사상 최악의 발명품은 그렇게 조용히 묻혀 사라졌어야 했다. 영진을 제외한 연구원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며 굳이 약속하지 않아도 그 일에 대해 잊은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연구팀 소속이었던 팀원 중 많은 이들이 아예 이쪽 분야를 떠나기도 했다.

단 한 번의 오작동이었지만 빼앗아간 것이 적지 않았다. 많은 연구원의 꿈과 지위,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날의 사망자는 한 명뿐이었다. 삭막한 연구소를 생동감 있게 만들어 준 작은 아이. 누구보다도 안드로이드를 친구로 여기고 사랑했던 작은 아이는 그날 눈을 감았다. 같은 상황을 또 반복할 수는 없었다.

 

 





본사의 임원인 유진석 이사는 영진의 연구에 아주 흥미가 있었다. 뒤늦게 영진이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개발하는 것에 성공했음을 알았을 땐 이미 해당 기체는 폐기된 후였다.

진석은 직접 영진을 찾았다. 진석에겐 그 기체가, 정확히는 그 기술력이 필요했다. 영진에 대해 알아보던 중 그가 십 년 전에도 같은 연구에 참여했음을 알았다. 십 년 전에 연구소 폭발 사고로 연구팀의 모든 연구가 불타 없어졌다는 사건에 대해선 진석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후 연구팀은 해산되었지만, 영진만은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왔던 모양이었다. 포기 않고 이어오던 연구의 결과물을 하루아침에 잃었으니 그가 얼마나 상심한 상태일지는 짐작이 갔다. 진석 같은 이에게 있어서 그런 사람을 구슬리는 것은 숨쉬기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일이 쉽게 풀리겠다고 생각하며 진석은 바로 연구소로 향했다.

그러나 영진은 평생을 바친 연구의 산물을 잃은 사람이라기엔 지나치게 멀쩡해 보였다. 진석은 본능적으로 T-001이 폐기되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이것 봐라. 일이 생각보다 재밌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디로 갔냐는 진석의 물음에 영진은 폐기되었다는 답만 앵무새처럼 반복적으로 할 뿐이었다. 쉽게 풀릴 줄 알았던 것은 진석의 오만이었다. 진석은 그 사실을 인정했다. 평생 연구소에만 박혀 지냈던 이라고 얕봤다. 그렇다고 진석이 포기할 인물은 아니었다.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든 지원하겠습니다.”


진석의 호의가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도 영진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되려 진석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저에게 투자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본사에서는 능력 있는 연구원들에게 언제든 투자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한 연구소이지 않습니까.”

“허허. 그런 상투적인 소리 말고 진짜 이사님의 목적이 궁금한 겁니다.”


귀찮게 하는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진석은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영진을 봤다.


“목적이라…. 박사님의 연구에 흥미가 있을 뿐입니다.”


영진은 진석이 말하는 흥미가 정말 연구에 대한 흥미가 아니란 것은 알고 있었다. 모든 거래에 있어 자신의 패를 먼저 보이는 게 얼마나 순진한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모른척할 뿐이었다. 팽팽한 기 싸움이 둘 사이에 오갔다. 진석은 빠르게 상황을 분석했다. 지금 굽혀야 하는 것은 인정하기 싫게도 자신이었다. 더 아쉬운 쪽이 원래 먼저 숙이는 법이었다.


“좋습니다. 저는 박사님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게 하는 그 모든 메커니즘 말입니다. 박사님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지원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가 개발해낸 것은 프로그램입니다. 안드로이드가 감정을 가지도록 만든 것이지요. 이사님. 하나 여쭙겠습니다. 왜 이 프로그램이 필요하십니까?”


진석은 답을 하지 않고 영진을 바라봤다. 어디까지 가진 패를 오픈해 보일지 생각하는 중이었다. 영진은 느긋한 기세로 진석의 답을 기다렸다. 티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본사 이사의 존재는 앞으로 영진이 계획해 두었던 모든 일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것은 분명했다.

진석은 사업가의 기질을 타고난 남자였다. 자세한 상황까진 모르더라도 영진의 이런 속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피차 숨기는 게 많은 건 박사님이나 저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한 배를 탄 동업자로서 서로 신뢰를 얻고 나면 그때 카드를 오픈하는 건 어떻습니까. 박사님께서도 손해 볼 제안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진석의 말이 옳았다. 영진이 손해 볼 게 없는 제안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진석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긴 하였으나 그건 아주 개인적인 궁금증으로 이 거래에서 고려할 사안은 아니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영진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사님께 프로그램을 제공해드리죠. 먼저 제가 원하는 것을 주신다면 말입니다.”


진석이 요구조건을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영진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요구조건을 말했다. 소장의 간섭없이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지위와 환경이었다. 물질적인 보상을 비롯한 일방적으로 이런 경우 요구하는 조건들을 떠올리던 진석은 간단한 영진의 조건에 되레 놀랐다.


“정말 그뿐입니까?”

“연구를 지원해주실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그건…당연히 해드려야지요.”

“그렇다면 됐습니다. 충분합니다.”

“…좋습니다. 이른 시일 내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얻게 되실 겁니다.”


진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깔끔하지만 어딘가 낡아 보이는 연구실이 현재 연구소에서 영진의 위치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악수하고 진석을 영진의 방을 나섰다. 원하는 것을 얻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서를 대기시켜놓았던 차에 타자마자 진석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우리 연구소 서울지부 거기 수석 연구원 자리에 내가 말한 친구 이름 올려. 그래, 최영진. 지금 바로. 이유? 내가 임명하겠다는데 그런 게 필요했나? 임원 추천이라고 써. 그래. 사무실은 지금 들어가지.”


진석은 영진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처럼 조용히 연구소를 떠났다. 두 사람 사이의 성사된 은밀한 계약을 손에 넣은 채였다.

 

 


진석의 전화 한 통의 힘은 엄청났다. 영진이 아무리 가지려고 아등바등 노력했어도 평생 손에 닿을 수나 있을까 싶은 지위가 하루아침에 발밑으로 떨어졌다. M사의 수석 연구원이 된 것이다. 든든한 배경을 손에 넣었겠다, 그다음은 계획해 두었던 일들을 실천하는 것뿐이었다.

진석으로부터 연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받을 수 있었다. 소장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에 마음 졸일 필요도 없었다. 영진이 가장 먼저 만들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대신하여 움직여줄 수 있는 존재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T-002였다. T-001만큼 정교하진 않았지만, 기쁨 같은 간단한 감정은 느낄 수 있는 T-002는 진석의 지원으로 별다른 절차 없이 본사 소속, 그것도 진석의 비서로 위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영진은 소장의 눈을 피해 T-001과 그 구매자를 도와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매일같이 꿈에서만 그리던 T-001의 목소리를 수화기 너머로 듣는 순간 영진은 진석에게 카드를 오픈하겠다는 연락을 넣었다.

 


 *     *     *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다 정국이 잠시 잠든 사이 무심코 TV를 튼 지민이 화면에 가득 나오는 정국의 얼굴을 보고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머그잔은 바닥과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긴급 속보라는 자막과 함께 차분한 앵커의 목소리가 지민의 귓가로 파고들었다.


— 속보입니다. M사에서 탈출했던 고위험군 안드로이드의 정보가 확인되었습니다. 현재 화면상으로 나가고 있는 외형입니다. 해당 안드로이드를 목격하신 분들은 아래 나가고 있는 전담팀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형?”


정국이 깨어났는지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민은 황급히 TV 화면을 끄기 위해 허둥거리다 거실로 나온 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정국의 시선이 당황한 지민의 얼굴을 지나 TV 화면으로 향한다.


“안 돼, 보지 마. 정국아.”

“아.”


화면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정국은 맥빠진 듯 웃었다.


“어떡해요. 형 이제 혼자 장 봐와야겠다. 먼데.”

“정국아.”

“나 괜찮아요. 그냥…이제 형이랑 같이 손잡고 못 돌아다니는 건 좀 아쉽다. 짐도 많을 텐데 멀리 보내는 것도.”


지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젠가는 닥쳐올 수도 있는 미래라고 생각하고 몇 번이고 머리에서 최악의 상황으로 그려보았던 일이었는데. 이렇게 대처하면 괜찮을 거라고 문제없다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했었는데. 다 부질없었다. 현실이 되어 다가오자 그런 생각들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지 실감이 났다. 서서히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아 소파에 기댄 지민이 진정이 되지 않는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정국은 차분하게 지민의 옆으로 다가가 떨리고 있는 어깨를 끌어안았다. 괜찮을 거예요. 전부다. 지민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들어 간다. 정국은 축축해진 어깨가 마를 때까지 말없이 지민의 등을 규칙적인 속도로 토닥여주었다.

 

 



지민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얼굴로 소파에 앉아 정국이 건넨 코코아를 홀짝였다. 그 사이 정국은 떨어진 머그잔과 그 잔해들을 모두 깔끔하게 치웠다. 우느라 불어터진 찐빵마냥 부은 지민을 보니 웃음이 났다. 무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만 자신까지 불안한 티를 내면 정말 지민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기에 정국은 더 괜찮은 척했다.


“찐빵이 완전히 불었네, 이거 어떡해.”


정국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지민의 옆에 앉아 말랑한 볼을 콕콕 건든다. 지민이 코코아를 홀짝거리다가 정국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며 밀어냈다. 심각하던 얼굴이 어느 정도 풀어져 있었다. 정국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밀어내는 지민에게 더 딱 달라붙어 꽉 끌어안았다.


“야, 쏟아져.”

“치우면 되죠.”

“쉽게도 말한다. 코코아라서 끈적거린다고.”

“알았어요, 알았어. 조심할게요.”


코코아가 쏟아지지 않게 조심조심 가지고 있던 지민이 정국의 움직임이 멈추자 다시 홀짝이기 시작했다. 단 걸 먹으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어차피 숨어 살 거 더 꼭꼭 숨는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었다. 지민 자신의 얼굴이 알려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혼자 다녀오면 됐다. 그리고 분명 곧 영진으로부터 연락이 올 것이었다. 그때까지 차분히 기다리고 있으면 됐다.


“손잡고 못 돌아다니기는 왜 못 돌아다녀. 집에서 하면 되지.”

“그렇네요.”

“그런 의미에서.”


자. 지민이 손바닥이 보이도록 손을 내밀었다. 정국이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깍지를 낀 채로 정국은 아직 코코아를 훌쩍이고 있는 지민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올려놓았다. 지민이 정국을 돌아보곤 피식 웃었다.

지금처럼 같이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손만 잡고 있어 보기도 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아 서로의 체온을 느끼기만 해도 됐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입을 맞출 수도 있고. 둘만 남겨진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많았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하고 싶으면 그때그때 바로 하면 됐다.

 


*     *     *


 

“구매자는 왜 수배령을 내리지 않는 겁니까?”

“민간인입니다. 범죄자도 아니고.”

“아니…위험하다고 얼굴만 나오지 않았다뿐이지 수배가 내려진 걸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경찰에 알리고….”

“그게 위험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그랬겠습니까. 그래서 그 도망간 안드로이드가 뭔데요? 구매자로서는 멀쩡하게 돈 주고 구매한 거지 않습니까. 저희는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도망쳤다는 안드로이드를 수배 내리고 찾는 겁니다. 그 구매자를 잡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요. 경찰은 사설탐정 집단이 아니에요.”


완강한 경위의 말에 연구소 측은 입에 꿀이라도 바른 것 마냥 조용해졌다. 듣고 있던 연구소 측 직원 한 명이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했다.


“몰랐다기엔 이미 데리고 도망갔잖아요?”

“그렇다고 민간인의 얼굴을 공개하며 수배를 내릴 순 없습니다. 흉악범도 아니고.”


경찰 측의 태도는 꺾일 것 같지 않았다. 사실 구매자의 얼굴도 공개하라는 것이 자신들의 억지란 것을 연구소 측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전국에 T-001의 얼굴이 공개되었으니 찾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구매자야 T-001과 함께 있을 게 뻔했으니 같이 있는 사람만 조용히 처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     *     *


 

영진은 진석과 만나고 나오는 길에 소식을 접했다. 속보로 수배령이 모두 나갔다는 사실을 2호에게 전해 들은 영진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깊게 한숨을 쉬었다.


“일단 집을 옮겨야겠군.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옮길 집을 마련할 테니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고 전하고.”


2호에게 지시를 내린 후 영진은 곧바로 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석도 소식을 접했는지 기다렸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나?

“우선 안전한 곳으로 두 사람을 옮겨야겠습니다.”

― 그 집도 충분히 안전할 것 같은데. 요즘 그런 동네에 누가 간다고.

“…이사님 명의 앞으로 별장이 몇 군데 있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 별장을 내놓아라?

“그냥 빌려주시는 겁니다. 잠시만 머물다가 떠날 겁니다.”

― …일단 알았네. 나도 비는 별장을 찾아야 하니까.

“말씀하신 일은 오늘부터 작업에 들어가 최대한 빨리 끝내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기다리고 있겠네.


영진은 진석과의 통화를 끝내고 시트에 몸을 기댄 채로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행복하니?’

‘…네.’


지민이 T-001을 바꿔주었던 날 행복하냐는 자신의 말에 답하는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T-001은 진짜 이름이 생기고 그 이름을 불러주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 정국이라…. 다음에 만나면 그렇게 불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함께 있어 주지 못하는 자식의 옆을 지키는 지민에게 영진은 말로 다 전하지 못할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두 사람만은 어떻게든 지킬 것이다. 자식을 잃는 것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영진을 연구소에 내려준 후 2호는 영진의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떠났다. 본사 임원 전용 주차장으로 돌아가 차를 주차한 후 정국과 지민을 만나러 갈 때마다 이용했던 수동의 구식 중형차로 갈아타고 영진의 말을 전하러 둘을 만나러 간다. 언제나 그랬듯이. 진석이 별장을 알아보는 동안 영진은 진석과의 계약 조건이었던 특별한 안드로이드를 만들면 됐다. 그러면 두 사람은 진석의 보호 아래 안전할 것이다.

연구실로 돌아온 영진은 미리 진석이 자신의 연구실로 보내놓은 안드로이드와 마주했다. 잘 빚은 도자기처럼 생긴 안드로이드는 진석의 죽은 약혼녀의 외향을 완전히 복사해 놓은 기체였다. 약혼녀를 잊지 못한 진석이 안드로이드를 그녀와 똑같은 모습으로 특별히 제작한 것이었다.

진석의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그녀가 살아 돌아온 것 같아 행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괴리감에 더 괴로워지기만 했고, 무슨 말을 해도 프로그래밍 된 대로만 앵무새같이 똑같은 말을 하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사랑하던 약혼녀의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를 가동을 중지시켜 방 안에 가둬야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T-001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영진을 찾아와 거래를 제안하게 되었다는 것이 진석이 오픈하지 않았던 카드였다.

영진은 진석의 이야기를 들으며 진심으로 눈앞의 남자를 동정했었다. 어쩌면 그런 진석의 모습에서 십 년 동안 포기 못 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진짜 거래의 시작을 위해 진석에게 전화를 걸었던 날, 진석 또한 영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정했으니 둘은 서로에게 연민을 느끼는 동시에 서로가 각자의 유일한 돌파구인 셈이었다.

당연하게도 진석이 요구한 것은 그녀에게 감정을 느끼는 프로그램을 넣는 일이었다. 영진은 신중했다.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프로그램을 집어넣는 과정에서 오류가 일어나면 바디가 파손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진지하게 경고하는 영진과는 달리 진석은 무엇이 문제냐는 듯 여유로운 얼굴로 어깨만 으쓱했다. 고장 나면 다른 바디를 쓰면 되잖아? 영진은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무의미한 경고를 하고 있던 것인지 깨달았다. 진석에게 안드로이드란 그저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안드로이드란 이와 다르지 않을 거였다. 영진은 씁쓸해지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거래를 위해 영진은 연구실에 도착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가동을 중지하고 누워 있는 안드로이드에게로 다가갔다. 진석이 미리 보내놓은 그 안드로이드였다. 정말 사람이 잠들어 있는 듯 정교한 생김새였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영진은 프로그램을 업로드 할 준비를 시작했다.

 


*     *     *


 

“비서가 움직였습니다.”

“따라붙어.”


소장의 눈빛이 걸려든 먹잇감을 보는 포식자의 그것처럼 흉흉하게 빛났다. 소장이 아는 영진은 잠자코 있을 위인이 못되었다. 사람을 붙여 영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 지시했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영진이 집조차 가지 않고 본사와 연구실만 오간다는 것뿐이었다. 이 좁은 행동반경 안에 무언가 있을 것이다. 소장은 그렇게 확신했다. 영진이 접촉하는 이라곤 본사 이사와 그 비서뿐이었다. T-001의 폐기와 함께 나타난 영진의 지원군. 소장은 비서의 뒤를 밟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처음 며칠은 그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었다. 소장은 침착하게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T-001의 외형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며 수배가 내려지자 비서는 평소와 다른 동선을 보였다. 꼬리를 잡을 기회였다. 소장은 숨죽여 웃으며 액자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 이 모든 일은 십 년 전의 사고에 대한 속죄이자 책임이었으며 T-001의 폐기는 자신의 사명이었다.

 


 *     *     *



울릴 일 없는 초인종이 울렸다. 소파에서 서로를 쿡쿡 건들며 장난을 치던 정국과 지민은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에 모든 행동을 멈추고 현관 쪽을 바라봤다. 누구지? 지민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가까이 가기만 해도 느껴질 정도로 지민의 몸이 떨리고 있었기에 정국은 잠시 멈칫했다.


“형.”

“누구지? 경찰일까? 어떻게 알았지?”


정국이 지민을 끌어안곤 등을 토닥였다. 작은 등은 점차 떨림이 멎어가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아닐 거예요.”

“그래두….”

“나가서 보고 올게요.”

“안 돼. 넌 여기 있어. 내가 가 볼게.”


떨던 사람은 어디 갔는지 지민이 벌떡 일어나며 말한다. 정국이 결연한 지민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괜찮은데….”

“아니야. 여기 있어.”


몸을 일으키려는 정국의 어깨를 꾹 눌러 앉힌 지민이 터벅터벅 현관으로 향한다. 인터폰의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는데 카메라엔 아무도 잡히지 않았다. 지민은 초인종을 누른 방문객의 정체를 물어야 할지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누구예요?”


정국이 지민의 어깨너머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지민의 어깨에 턱을 올린 채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던 정국이 지민의 허리를 감으며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없네?”

“그러게. 아무도 없네.”


나가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불쑥 화면 속으로 누군가 솟아나듯 들어왔다. 화들짝 놀란 지민이 놀라 뒷걸음질 치는 것을 단단한 몸으로 받으며 정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기는 정국도 마찬가지였다. 화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2호였다.


“휴. 뭐야. 2호예요, 형.”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정국이 한 손으로 잡은 지민의 몸을 흔들며 다른 한 손으론 인터폰으로 손을 뻗었다. 삐빅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인터폰을 내려놓은 정국이 현관을 바라보는 동안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지민이 꼼지락거리며 정국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곧 정원을 가로지른 2호가 현관문을 열었다. 무감각해 보이는 2호의 얼굴을 보자마자 지민은 인사를 건네며 은근히 그를 책망했다.


“어서 와요. 연락도 없이 웬일이에요? 놀랐잖아요. 불쑥 나타나서 정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2호는 지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뜻인 듯했다. 2호는 말없이 들고 온 가방을 바닥에 툭 내려놓았다. 빈 짐가방이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민은 착잡한 얼굴로 바닥에 놓인 빈 가방들을 바라보았다.


“구매 데이터를 찾아 외형 정보는 넘어갔지만, 아직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장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빨리 거주지를 옮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것이 아버지의 판단이십니다.”

“어디로 가게 되나요?”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우리더러 떠나라고?”


가만히 지민과 2호를 지켜보던 정국이 끼어들었다. 잔뜩 굳은 얼굴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2호가 그런 정국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잠깐…!”

“정국아.”


지민이 정국의 옷깃을 잡아당긴다. 정국이 고개를 돌리는 동안 지민은 어서 가라는 듯 2호에게 눈으로 인사를 건넸다. 이런 비언어적인 표현도 알아듣는 건지, 원래부터 무슨 말을 하든 떠날 생각이었는지 2호는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빠르게 집을 나섰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정국이 시선을 돌렸다 다시 지민을 바라본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단단히 그런 모양이었다. 크고 둥근 눈을 이렇게 각지게 뜨고 있을 때마저도 정국은 지민의 눈엔 귀여웠다.


“짐 빨리 챙겨 놓자.”

“…….”


빈 가방을 챙기며 말하는데 정국이 답이 없다. 지민이 가방을 손에 든 채로 정국을 바라봤다.


“정국아?”

“형은…. 왜 이렇게 해요?”

“뭘?”


정국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지민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국이 울음을 꾹 참는 얼굴로 지민을 바라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나는 진짜 사람도 아닌데…날 위해서 왜 이렇게 해요?”

“뭐라고?”


지민이 얼굴을 찌푸렸다. 정국이 하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화가 나는 것도 같았다. 다시 말해 봐. 화를 억누른 목소리로 지민이 정국을 재촉했다. 정국이 가을 호수 같은 쓸쓸한 눈동자로 지민을 바라봤다. 그 맑은 눈동자의 비친 자신의 얼굴이 화가 많이 나 보였기에 지민은 애써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빈 가방이 툭 떨어졌다. 지민은 정국의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응? 정국아. 무슨 뜻이야, 그게.”

“나는 안드로이드예요.”

“알아. 근데 그게 뭐?”

“…내가 없어도 날 대신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는 많잖아요. 안드로이드란 건 소모품이니까.”


정국은 은근슬쩍 지민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냈다. 지민은 그런 정국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 침묵이 견디기 무서워 정국은 고개를 푹 숙였다. 지민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겁이 났다. 그러네. 소모품이네. 이렇게 힘든 생활 그만할래. 평생 숨어다녀야 한다니. 그냥 새로 만들지 뭐. 그런 말이 나올까 봐 정국은 귀를 막고 싶은 것을 주먹을 꽉 쥐는 거로 겨우 참았다.

정국의 말을 들은 지민은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어떤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했을지 정국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하면 무언가 울컥 속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른다. 내가 사람이 아니라서. 우리가 보통의 연인이 아니라서. 안드로이드란 소모품이니까.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정국이 느낄 수많은 불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숨이 턱턱 막혀온다. 분명 정국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깊은 심해에 있는 것 같겠지. 이해하려고 해도 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임은 틀림없었다. 그렇게 한참 고개 숙인 정국을 바라만 보던 지민이 한 발 한 발 정국에게로 다가갔다.


“정국아.”

“…….”

“나 봐봐.”


정국이 슬쩍 고개를 들어 지민을 바라봤다. 지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 따뜻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놓쳤던 손도 다시 붙잡는다. 따뜻했다. 이렇게 따뜻한데. 온기가 있는데. 지민은 정국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아까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등을 조심스럽게 토닥인다.


“세상에 안드로이드는 많은데…. 너는 하나잖아.”

“…….”


정국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터진 것 같았다.


“정국아.”

“…네.”

“너는 세상에 하나뿐이야.”

“…….”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그런 생각도 하지 마.”

“아.”


정국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새어 나왔다. 왜 지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을까. 왜 지민을 믿지 못했을까. 지민은 몇 번이고 자신을 특별하고 유일한 존재라고 말해주었었는데.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지민을 믿지 못한 자신이. 그래서 지민에게 상처를 준 것이.


“미안해요.”


차마 지민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인 정국의 볼을 지민이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말했잖아, 정국아. 너는 나한테 있어서 소중하다고. 다정한 목소리였다. 정국은 코를 한 번 훌쩍이곤 지민이 으스러질 정도로 꽉 끌어안았다.


“형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나도. 널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정말 이건요, 기적 같은 행운이에요. 평생 찾아올까 말까 한 그런 행운.”


정국의 품에 안긴 채로 지민이 푸스스 웃었다. 그러곤 정국의 귓가에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 집에서 보내는 밤도 이게 마지막이네.”


나름대로 짧은 시간 동안 쌓인 추억이 많았다. 짐을 다 싼 후 나란히 누운 채 지민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요. 정국이 조용히 맞장구친다.


“우리 다음에…일이 다 해결되고 나면 여기 와서 살까?”

“그래도 돼요?”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꼭 다시 오자. 둘만 있기에 한적하고 좋잖아.”


지민이 꼬물꼬물 정국의 품 안으로 파고들며 말했다. 정국은 익숙하게 그런 지민을 끌어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집에서 보내던 모든 밤을 기억한다. 마주치는 이 하나 없이 조용한 동네는 세상에 단둘만 남은 것 같은 생각이 들게 하였었다. 떠난다니까 아쉬운 것이 사실이었다.


“마지막 밤인데…. 추억이나 남겨요.”

“응?”


눈 깜빡하는 사이에 지민의 등이 푹신한 침대에 닿았다. 천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싶더니 곧 정국의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찬다.

단 둘뿐인 밤은 길었다.

 


 *     *     *



“지난주에 마트에서 비슷한 사람을 봤었다는 제보를 받아서 그 일대를 쭉 다 돌아보는데 마침 그 근처에 재개발 전인 동네가 하나 있더라고요. 좀 거리가 있긴 한데 걸어서 이동 못 할 정도도 아니고 해서 오늘 그쪽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예, 뭐. 그럼 뭐라도 찾으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이 많으셔요.”


친절하고 인자한 가면을 쓴 소장이 웃으며 보고차 들른 경찰들에게 연신 잘 부탁한다며 인사했다. 소장은 경찰들이 돌아가고 나자 곧바로 가드를 호출했다.


“어제 어떻게 됐어?”

“유진석 이사 비서의 뒤를 쫓았더니 방금 경찰 쪽에서 말한 재개발 전인 지역 일대 쪽으로 갔고, 위치까지 확인했습니다.”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가. 경찰이 찾기 전에 처리하고.”

“예, 알겠습니다.”


가드가 나가고 소장은 실성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완벽한 승리였다. 자신을 기만한 죄는 똑똑히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

 


 *     *     *



2호를 기다리는 동안 정국과 지민은 손을 꽉 맞잡은 채 제법 넓은 정원을 거닐었다. 비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아름답다는 느낌보단 어딘가 을씨년스러웠지만 제대로 관리한다면 분명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피어날 것이다. 꽃이 만개한 정원을 상상하며 지민은 정국에게 여기엔 무슨 꽃을 심고 저기엔 무슨 꽃을 심자는 이야기를 조잘거렸다. 응, 예쁘겠다. 정국은 지민의 이야기를 고개까지 끄덕이며 들어주었다. 마주 보고 웃는 사이 집 밖에서 차 소리가 났다.


“왔나 보다. 짐 가져올게요. 여기 있어요.”

“응.”


정국이 챙겨 놓은 짐가방을 챙기러 집에 잠시 들어간 순간이었다. 지민은 아무런 의심 없이 대문을 열어주었다.


“빨리 왔….”


그러나 밖에 있는 이들은 지민이 기다리던 2호가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의 등장에 황급히 대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늦었다.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덩치의 남자를 피해 지민은 정원 안으로 가까스로 도망칠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리가 제대로 된 사고를 하지 못했다. 다른 거는 몰라도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경찰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에 낯선 이들의 정체가 연구소에서 보낸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집 안으로 도망쳐도 되는 걸까. 안엔 정국이 있었다. 이들의 목적은 정국일 테니 일단 자신이 시간을 벌고 정국을 도망치도록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벽이 나왔기에 서서히 속력을 줄이고 멈춰선 지민이 뒤를 돌아 대화를 시도하려는 순간 차가운 날붙이가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악!”


비명과 함께 비틀거린 지민이 벽을 붙잡아 선 채로 겨우겨우 쓰러지는 것을 면했다.


“이게 무슨….”

“빗나갔나? 그러게 잘 쑤시라니까.”


허리의 살점이 뜯어져 나가기라도 한 듯 화끈거렸다. 지민은 고통에 이를 악물고 정장 차림의 남자들을 노려봤다.


“우리도 악감정은 없어. 그러게 왜 그런 거랑 얽혀서.”

“…하아. 당신들 뭐야.”

“곧 가실 분이 알 건 없고. 가만히 있으면 안 아프게 보내줄게.”


설상가상으로 시야도 흐려지기 시작했다. 지민은 최대한 벽에 붙은 채로 숨을 골랐다. 정국이 그냥 도망갔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번쩍이는 칼날이 천천히 지민을 향해 다가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머리가 굳은 돌덩이마냥 무거웠다. 여기서 이렇게 끝날 수는 없었다. 지민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옆으로 굴렀다. 덕분에 칼은 피할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땅을 짚고 일어난 지민이 거의 네발로 기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괜히 피차 힘 빼지 말자고.”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가 지민을 붙잡아 세웠다. 칼에 찔리기 전 지민이 한 생각은 홀로 남은 정국이 부디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꼭 도망가야 해. 눈을 질끈 감는데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붙잡혔던 몸이 놓이며 땅으로 쓰러졌다. 어윽. 옆구리를 부여잡고 눈을 뜨니 정국이 남자를 떼어내 바닥에 팽개치고 있는 참이었다.


“저, 정국아….”

“형. 괜찮아요?”


소란에 대기하고 있던 이들도 우르르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정국은 다급히 지민을 일으켜 세우려다 안 되겠는지 지민의 등을 받치고 무릎 사이로 손을 넣어 안아 들었다.


“안 돼, 형. 정신 차려요.”


지민이 괜찮다는 듯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정국은 지민을 안아 든 채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뒤에서 멈추라고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지민을 단단히 안아 들고 정국은 묵묵히 달렸다. 어디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얼마를 달렸는지 뒤에서 쫓아오는 기척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자신의 뒤를 쫓는 이들은 인간이었다. 이 거리를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버려진 듯한 공사 현장에 숨어들어온 정국이 지민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 위로 놓인 채 눕혔다. 입고 있던 자켓을 잠시 벗어둔 후 정국은 무지 티를 찢어 지민의 상처 부위를 꾹 눌렀다.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흘러내린 지민의 땀을 꾹꾹 눌러 닦아주며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민이 눈을 떴다.


“으으….”

“괜찮아요? 정신이 들어요?”

“으응…. 여긴….”

“일단 도망 나왔는데. 버려진 공사장 같아요. 아프진 않아요?”


지민이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팔을 뻗었다. 정국이 무슨 일이 있냐는 얼굴로 허리를 숙여 가까이 다가가 주었다.


“다행이다…무사해서.”

“제가 문제예요, 지금? 형 칼에 찔렸다고요!”

“아니야. 안 찔렸어. 그냥 스쳤어. 괜찮아.”


지민이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정국은 지민이 가만히 누워있으면 했지만, 고개를 저은 지민은 기어코 일어나 앉았다.


“2호한테 연락해야 해.”

“형. 일단 좀 쉬어야….”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잖아. 곧 밤이니까…. 폐 공사장이라고? 그럼 공중전화 근처일 텐데….”


지민은 당장에라도 전화를 걸러 갈 기세였다. 정국이 놀라 안 된다며 막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그대로 전화를 하러 갔을 것이 분명했다. 고개를 푹 숙인 정국이 한숨을 내쉬곤 지민을 벽에 기대어 앉혔다.


“내가 하고 올게요. 혼자 있어도 괜찮겠어요?”

“그럼.”

“어디 가지 말고. 아씨….”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

“빨리 갔다 올게요.”


자리에서 일어나 공사장을 나서면서도 정국은 몇 번이고 지민을 돌아봤다. 지민은 그럴 때마다 어서 가라며 손짓했다.

 

 




공중전화 앞에 멈춰선 정국은 2호의 번호를 누르려다 멈칫했다. 자신과 같이 있는 한 지민은 계속해서 위험해 처할 것이다. 오늘 지민을 습격한 이들은 분명 소장이 보낸 사람들이었을 것이고, 계속해서 지민을 노리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목적 자체가 지민이란 것처럼 행동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꼭 죽이려는 것처럼.

한참을 머뭇거리며 공중전화 앞에서 서성이던 정국은 이럴 시간조차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꾹 감고 지민을 떠올리던 정국이 이내 결심한 듯 다이얼을 눌렀다. 신호음은 길지 않았다.


― 네.

“여보, 여보세요? 방금 여기….”

― 네. 압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나야 당연히 괜찮은데 형이….”

― 많이 다쳤습니까?

“칼이 허리 쪽을 스친 거 같은데….”


정국은 침착하게 지민의 상태를 떠올렸다. 지민의 말대로 칼에 찔린 것은 아니고 스친 정도였다. 지혈만 잘하면 큰 탈 없을 거란 판단이 섰다.


“지혈만 잘하면 괜찮을 건데…. 저 사람들 뭡니까?”


패닉상태로 돌아가던 사고 체계가 정상의 궤도로 돌아오자마자 정국은 얼굴을 굳힌 채로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표정이 전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소리만 들어도 무슨 표정일지 보일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였다.


― 소장이 보낸 사람입니다.

“그걸 몰라서 묻는다고 생각해요?”

― …소장이 지민씨를 몰래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형을요? 왜?”


2호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을 말해야 할지 모른 척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모든 안드로이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그게 맞는 건데 이상하게 2호는 사실을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가? 짧은 침묵이 오갔다. 2호는 프로그램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정국은 말없이 수화기 너머 높낮이 없는 2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근처엔 다 빈집이니 어디든 몸을 피하라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2호의 말을 듣기만 하던 정국은 이 대답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혼자 있는 지민에게로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2호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귓가에서 맴돈다. 소장은 당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살려두지 않을 생각입니다. 말에 형태가 있다면 2호의 말은 사슬이 되어 자신의 몸을 칭칭 감았으리라. 정국은 주먹을 꽉 쥔 채 뛰기 시작했다.

곧 폐공사장이 보였다. 주변은 어느새 어둑해지기 시작한 채였다. 정국은 주변을 살피며 공사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민은 벽에 기댄 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많이 기다렸어요?”

“응? 아니. 금방 왔네.”


지민이 웃으며 금세 울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걱정스레 보고 있는 정국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생했다는 뜻이었다. 정국은 얌전히 지민의 손길을 느꼈다. 2호가 뭐래? 지민이 조금 지친 목소리로 묻는다. 정국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지민을 일으키다 그냥 번쩍 안아 들었다.


“근처 집들 다 빈집이래요. 어디든 들어가 있으라고 했어요.”

“그래?”


지민이 정국의 가슴팍에 고개를 기댄 채 얕은 숨을 내쉬었다.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에 정국은 지민을 고쳐 안고 조심스럽게 공사장 밖으로 향했다.


거리는 조용했다. 추격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정국은 온 감각을 곤두세운 채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지민은 어느새 쌕쌕 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공중전화와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바로 옆은 적당한 거리의 마당이 깨끗한 집을 발견한 정국은 지민을 잠시 내려놓고 담을 뛰어넘었다.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와선 담장에 기대어 있는 지민을 다시 안아 들었다. 안에 깨끗한 수건과 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안은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은 지 시간이 지난 듯했지만, 생각보다 깔끔했다. 정국은 먼지 쌓인 소파를 대충 털어내고 그 위에 지민을 조심스럽게 눕혔다. 급히 집을 버리고 가기라도 한 듯 살림살이들이 제법 남아있었는데 수도도 아직 끊기지 않은 상태였다. 정국은 부지런히 집안을 뒤지고 다녔다. 욕실 선반에서 찾은 수건을 적셔 지민의 상처 부위를 닦아내고 옷가지들을 대충 찢어 둘러 맺다. 지민은 간간이 얼굴을 찡그리며 아픈 듯 신음했지만 깨어나진 않았다.

정국은 지민이 누워 있는 소파 옆 바닥에 앉은 채로 지민의 손을 꽉 붙잡았다. 땀에 젖은 지민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다가 가슴에 귀를 대고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를 듣기도 했다. 쿵쿵 뛰는 박동은 정국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눈을 감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정국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지민을 바라봤다. 2호의 목소리가 다시 온몸을 옥죄어온다. 소장은 자신과 관련 있는 모든 이가 살아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민을 노리는 이들이 찾아올 것이다. 정국은 조심스레 지민의 이마 위로 입을 맞추었다. 눈물방울이 툭툭 지민의 감긴 눈가 위로 떨어진다. 꼭 지민이 우는 것 같았다. 정국은 처음으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싫었다. 영진이 원망스러웠다. 슬픔 같은 건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정국은 그렇게 밤새 지민의 곁에 앉아 숨죽여 울었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흉내만 내는 슬픔이 아니었다. 처음 느껴보는 슬픔 앞에서 정국은 무기력했다. 처음 맞는 긴 밤이었다. 지민이 눈을 뜬 것은 한참 뒤였다.


“…정국아?”


정국이 밤새 숨죽여 슬픔을 삼켜내는 동안 날이 밝았다. 지민은 희미하게 뜨여진 시야 사이로 똑똑 눈물방울을 떨구는 정국을 바라봤다. 천근 같은 팔을 움직여 눈가를 훔치자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밤새 흘린 눈물일까. 누구의 눈물일까. 지민은 멍하니 생각하며 정국에게로 손을 뻗었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눈물이 안쓰러웠다.


“왜 울어어….”


정국이 고개를 든다. 우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숨이 턱 막혔다. 정국의 눈물 젖은 얼굴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데 지민 자신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형이,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 안 아파….”

“힘들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힘들어.”

“울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울어. 나 씩씩한데?”


지민이 웃어 보인다. 정국이 따라 웃는다. 분명 웃고 있는데 슬픔은 가시질 않는다. 이상하다. 웃으면 행복하다 했는데. 자신의 사고 체계가 고장 난 것일까? 이렇게 웃고 있는데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사실 지민도 같은 거 아닐까. 웃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은 거라면. 마음 한쪽이 콕콕 쑤셔오기 시작한다. 정국은 밤새 고민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렸다. 가슴을 짓누르던 질문이 사라지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그 대신 그곳에 두 배의 슬픔이 얹어진다.


“더 자요. 자고 일어나면 2호한테 연락해야죠.”

“그래, 정국아. 너두….”


지민의 눈이 느리게 깜빡이더니 꼭 닫힌다. 정국은 잠든 지민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그 얼굴을 모두 기억하겠다는 듯.

 


 *     *     *



정국은 한숨도 눈을 붙이지 않은 채 지민의 곁을 지켰다. 지민은 몇 시간이 더 흐른 후 다시 눈을 떴다. 눈동자에 생기가 도는 것이 많이 회복된 듯 보였다.


“좀 잤어?”


지민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정국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울었냐는 듯 멀쩡한 얼굴이었다. 운 흔적도 하나 보이지 않았기에 지민은 간밤에 본 정국의 모습이 꿈인가 싶을 정도였다.


“여기는 아직 못 찾는 거 같아요. 2호가 자기가 뒤를 밟힌 것 같다고 당장은 못 오고 일단 오늘 다시 연락 달라고 했어요.”

“그렇구나.”


지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아직 일어나면…!”

“괜찮아.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지민은 정말 괜찮은 건지 정국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제법 씩씩한 소리로 말하며 일어나 앉았다. 지민의 상태를 살피던 정국은 지민의 얼굴이 아픈 것을 애써 참는 것이 아님이라 판단하고 나서야 안절부절못하던 몸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배고프죠.”

“응? 괜찮….”


지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난 정국이 어제 집안을 뒤지며 찾은 과자 몇 봉지를 들고 와선 지민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거밖에 없더라구요. 2호한테 연락하는 겸 근처 돌아보고 올게요.”

“안 돼. 너 위험해.”

“괜찮아요. 제가 그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고 지치지도 않잖아요.”

“그래도….”


정국은 대답 대신 지민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맞물린 입술 사이로 서로의 체온만 전해지는 담백한 입맞춤이었다.


“…다녀올게요.”

“조심해야 해. 수상한 사람 있으면 따라가지 말구.”


정국이 피식 웃곤 지민의 머리를 이리저리 헝클어뜨렸다.


“알았어요. 금방 올게요. 걱정하지 마요.”


정국이 현관문을 나서는 것을 지민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좇았다. 평소의 정국과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인데 어딘가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렸다. 불안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잠결에 봤던 정국의 우는 모습 때문일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자꾸 지민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금방 온다고 했으니까. 기다리면 될 거야. 불안해하지 말고 기다리자. 지민은 자신을 타이르며 불안함에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     *     *



공중전화 앞으로 하루 만에 돌아온 정국은 부스 앞에 멈춰선 채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지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결정을 내렸는데도 실행에 옮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간 후 수화기를 들었다. 정국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지민의 행복.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정국이 이내 결심했다는 듯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가는 짧은 순간이 아주 긴 시간같이 느껴졌다. 딸각 소리와 함께 통화가 연결되었다.

 


*     *     *



정국은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다. 어딘가 쫓기듯 급히 돌아온 정국이 소파에 앉아 다 먹은 과자 봉지로 딱지를 접고 있던 지민에게로 달려들 듯 다가왔다.


“2호가 뭐래?”

“형.”

“응?”

“키스해도 돼요?”

“뭐야, 갑자기.”

“응? 해도 돼요?”


정국의 표정이 어딘가 절박해 보였기에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2호로부터 지금 상황에 대해 좋지 않은 소리라도 들은 건가 싶었다. 어제부터 예상치 않은 상황이 계속 일어나니 그저 많이 놀라서 그러려니 했다. 잡아먹을 듯 입을 맞추던 평소와 달리 아주 조심스럽게 입맞춤이었다. 평소와 다른 키스에 지민은 가슴 한편이 간질거리는 것 같아 웃음을 터뜨렸다. 입술을 맞댄 채로 정국도 웃었다.

그들은 도착했을까? 정국은 지민을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는 것처럼 조심히 품에 안은 채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도착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현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민이 품 안에서 빼꼼 고개를 드는 것이 느껴졌다. 정국은 저도 모르게 지민의 옷깃을 꽉 쥐었다 놓았다.


“형.”

“어?”

“사랑해요.”


지민이 현관을 보지 못하게 얼굴을 붙잡은 채로 정국이 마지막 입맞춤을 했다. 지민은 정국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다쳤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울고 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정국이 뭐라 했더라. 지민은 입속을 헤집는 감촉에 정신을 뺏긴 채로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갔다.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힘들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울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국은 눈물범벅인 얼굴로 그렇게 말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려는 순간 지민의 시야에 낯선 이들이 들어왔다.

경찰이었다. 지민이 통증도 잊고 벌떡 일어나 정국의 앞을 막아섰다. 경찰이 여길 어떻게 왔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정국을 지켜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나 정국은 경찰을 가로막고 선 작은 등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지민을 지나쳐 경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민이 놀라 정국을 붙잡으려 했지만, 옷깃이 미끄러지듯 지민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형은 안전한 거죠?”

“물론입니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저희가 있는 걸요.”

“정국아.”


정국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지민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절망적인 얼굴로 서 있었다. 정국은 주먹을 꽉 쥔 채로 괜찮다는 듯 웃었다.


“병원 꼭 가고요.”

“…너.”

“이제 집에 가요, 형. 먼저 가 있어요.”

“너, 이게 무슨….”

“아프지 말고.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했잖아.”

“…….”

“그리고 울지 마요.”


지민은 정국의 말에 퍼즐 조각들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정국이 오늘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것은 2호가 아니었다. 정국은, 그러니까 자신이 다친 것을 제 탓이라 생각하던 정국은, 스스로 경찰을 부른 것이었다. 경찰이 정국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양옆으로 팔짱을 끼운 채 인도했다.


“안 돼!”


지민이 튀어가려고 했지만 다른 수사관에 의해 제지당했다. 정국의 손에 채워진 수갑이 비수가 된 것처럼 지민에게 꽂혔다. 그걸 왜 쟤한테 채워. 뭘 잘못했다고! 어디로 데려가는 데요. 왜 데려가는 데요! 악을 쓰는 지민을 진정시킨 수사관이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아직 적합성 판정 전이라 검사를 받고 확인만 되면 다시 나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랑 함께 가시죠. 일단은 조사도 받으셔야 하고, 병원도 가셔야 할 것 같은데…이건 어디서 다치신 거죠?”


당연하게도 지민의 귀에 그 모든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지민은 필사적으로 수사관을 뿌리치고 맨발로 집을 뛰쳐나왔다.


“정국아!”


정국은 잠시 멈칫했지만, 지민을 돌아보지 않았다. 여기서 돌아보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국아…제발….”


지민의 흐느낌을 들으며 정국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당장 모든 걸 뿌리치고 달려가고 싶었다. 형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형의 행복을 바라서 택한 길인데 내가 또 형을 울리네요. 전하지 못할 말을 속으로 되뇌며 정국은 경찰차에 올라탔다. 지민의 안전을 약속받았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가벼웠지만, 지민을 보지 못한다는 슬픔은 두 배의 무게가 되어 정국을 짓눌렀다. 정국은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정국이 경찰차를 타고 사라지는 모습을 눈에 다 담은 지민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흐릿했던 정국의 우는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밤새 너는 무슨 생각을, 어떤 기분으로…. 곧 지민은 정신이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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