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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제로 디그리 12

이제 슬픔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리


지민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의 침대 위였다. 참고인 조사 때문에 지민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던 수사관은 지민이 깨어나자마자 이것저것 물어왔다. 지민은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정국의 행방을 물었다. 답을 피하던 수사관은 끈질기게 이어지는 지민의 질문에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이다 M사의 연구소로 보내졌으며 판정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아니잖아요. 죽일 거잖아요. 지민의 충혈된 눈이 수사관을 노려본다. 자신을 잡겠다고 쫓아오던 남자들. 번쩍이던 칼날. 옆구리를 파고드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 연구소에서 검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수사관이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지 않았기에 지민은 더 묻는 것을 멈추고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웠다. 지민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수사관은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수사관이 나선 병실 안은 작은 TV 소리만이 윙윙거렸다.


“경찰 당국은 수배되어있던 안드로이드가 직접 연락을 해왔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이게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언젠가 정국이 재밌다고 말했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이었다. 지민은 당장 TV를 꺼버리기 위해 몸을 일으키다가 화면 아래 긴급 속보라는 문구와 함께 나타난 자막을 보고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다. 당장 세상이 무너져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아, 방금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연구소 측에서 해당 안드로이드에게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며 폐기처분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 아…. 지민의 입에서 괴로운 듯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칼에 찔렸을 때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다. 피를 토할 것 같은 고통이었다. 치명적인 결함? 대체 그 결함이 뭔데? 지민은 당장 연구소장이란 사람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었다.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 점 어떻게 보십니까?”

“주목해야 할 것은 경찰의 브리핑이거든요.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던 부분. 여길 주목하셔야 합니다.”


정국이 제 발로 경찰을 불렀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지민은 병원복의 가슴 부근을 움켜쥐었다. 울렁거리는 속이 당장에라도 속을 다 게워내고 싶었다. 정국은 그 좁은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다이얼을 누르기 전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경찰을 부르기까지 어떤 결심이 필요했을까. 이제 자신이 지켜주겠다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국을 데려와야 했다. 계속 이어지는 헛구역질에 지민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를 잡고 응어리진 모든 것을 토해내려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는 것은 없었다. 결국 신물만 뱉어낸 지민이 세면대 물을 틀며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얼굴이 상해있었다. 거울을 쓸어내리던 지민이 입을 헹궈내곤 가슴께를 붙잡은 채 화장실에서 나왔다.

TV 프로그램 속에서 토론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지민은 벽을 잡은 채 TV 화면을 노려봤다.


“저는 이 말을 딱 듣는 순간 굉장히 이질감을 느꼈거든요.”

“어떤 부분에서입니까?”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결정을 내린 거예요. 경찰에 돌아가기로. 굉장히 이질적이지 않습니까? 이 부분은 저보다 박사님이 더 잘 아실 것 같은데.”


가만히 토론을 듣고만 있던 나이 지긋한 남성이 여성 패널에게 지목받자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란 쉽게 생각하자면 아주 정교한 컴퓨터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안드로이드를 생각해봅시다. 안드로이드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들은 대답이란 걸 합니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시켰을 때는 그 행동을 수행합니다. 딱 보이는 것만 놓고 보면 안드로이드들 질문에 대답하고 명령을 수행하고 하는 행동들이 자기 의지로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런 질문을 했을 땐 이런 대답을 해라. 명령을 받았으면 행하라. 어떻게 행동해라. 이런 모든 행동 지침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것. 그게 바로 안드로이드입니다. 모두 데이터의 연산작용 때문에 움직이는 거예요. 그들에겐 자신의 의지라는 건 사실 없는 거죠.”

“네, 맞습니다. 제가 경찰 브리핑에서 직접 전화를 걸어 위치를 알렸다는 내용에 집중한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데이터대로만 움직이는 게 안드로이드인데 그럼 전화를 왜 했을까요?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서? 제가 볼 때 이 행동은 안드로이드의 자유의지였습니다. 결정적으로. 현장에서 다친 시민 한 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죠. 바로 해당 안드로이드의 구매자였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지는 아직 모르지만, 만약 안드로이드가 ‘자신이 없어야 이 사람이 안전하다.’ 이런 판단을 자율적으로 했다면요? 정확하게 어떤 안드로이드고 무슨 결함이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기존의 안드로이드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는 볼 수 있겠네요. 제 의견은 여기까지입니다.”


그 뒤의 말들은 모두 음소거 처리한 듯 웅웅 거리며 지민의 귓가에 맴돌았다. 여자의 말이 다 맞았다. 정국은 자신이 곁에 있으면 지민이 위험해진다는 생각에 스스로 경찰을 불렀을 것이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연구소에 발을 들였을 것이다. 참았던 눈물이 후두둑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지민은 세면대로 달려가며 생각했다. 병원에서 보낼 시간이 없었다. 하루빨리 영진을 만나야만 했다.

 


 *     *     *



“폐기처리 해야 합니다.”


영진의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이 쏠렸다. 다들 하나같이 놀란 얼굴이었다. 놀란 것은 소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폐기처분을 반대할 거라고 생각되었던 영진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폐기를 주장하고 있었다.


“아니, 박사님께서 만드셨는데….”

“소장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너무 위험한 걸 제가 세상에 꺼내 놓을 뻔했더군요.”


소장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영진을 살폈다. 이번에는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기에 이렇게 나오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회의실이 술렁였다.


“그, 그래도 과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은 거 아닙니까? 구매자가 위험해질까 봐 스스로 경찰에 신고한 걸 보면 그렇게 막 위험한 것만도 같지 않고….”

“그건 T-001의 눈빛을 보지 못해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영진은 직접 가져온 영상을 틀어 주었다. 의자에 묶여 있는 정국이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적대감과 증오, 그리고 살의였다.


“이걸 보고도 위험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신다면 안과를 가 보시는 게 좋겠군요.”


회의실이 침묵에 휩싸였다. 연구소장뿐만 아니라 만든 이까지도 강력하게 폐기를 주장하자 폐기하는 쪽으로 점차 의견이 모였다. 개중에는 다신 없을 발명품을 부순다는 생각에 아쉬워 입맛을 다시는 이도 있었다. 영진을 지켜보던 소장이 회의실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와서 마음이 바뀐 이유는 무엇이지?”

“저는 처음부터 지시대로 폐기처분을 하였습니다. T-001이 예상보다 똑똑했던 것뿐입니다.”

“…그래, 그런 믿지 못할 소리는 사실이라고 하지. 자식 같다던 T-001을 포기하는 이유가 뭔가?”

“…….”

“말해보게. 나는 자네가 본사 이사를 뒤에 업고 무슨 꿍꿍이를 꾸리고 있는지 알아야겠으니.”

“…….”

“말하지 않는다면….”

“저는.”


날카로운 소장의 모습에 웅성거리던 회의실이 영진이 입을 여는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모든 시선은 영진과 소장에게로 향했다.


“딸을 잃었습니다.”

“…….”


소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십 년 전의 사건은 금기시되는 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진이 직접 이야기를 꺼낼 줄은 차마 예상 못 했었다.


“그와 함께 자식 같던 첫 성공작도 잃었죠.”

“그건 성공작이 아니었어.”

“…맞습니다. 실패였죠. 뼈아픈 실패. 그 실패 때문에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가족도. 연구의 성과도. 오랫동안 꿔왔던 꿈도. 뜻을 함께하던 동료들도! 저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

“소장님이 맞습니다. 저는 자식을 잃은 고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매달렸는지도 모르지요. 십 년 전에 한 번 실패했던 그 연구에. 그래야 딸을 잃은 그 날의 사고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아이는 안드로이드를 참 좋아했으니까요.”

“…그걸 자네는 십 년 동안….”


소장이 얼굴을 찌푸린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연민이었다. 오래전 꿈을 함께 했던 동료에 대한, 그 꿈으로 자식까지 잃은 아비에 대한 연민이었다.


“근데 이제 알게 된 겁니다. 인간에게 적대감을 보이는 안드로이드가 가져올 미래가 어떠한지.”


영진의 시선이 화면 속의 정국에게로 향한다. 그 날의 ZERO도 비슷한 눈을 했었다. ZERO는 영진과 소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을 가족으로 여겼다. 특히 영진을 아버지라 여겼다. 여타 영진이 만든 안드로이드들이 그러했듯이. 연구소엔 영진의 일곱 살배기 딸이 종종 놀러 오곤 했는데 아이는 아버지의 일을 자랑스러워했으며 연구소의 안드로이드들을 좋아했다. ZERO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안드로이드들과 달리 진짜 대화가 가능한 ZERO는 어린아이에게 있어서 꼭 친구같이 다가왔다.

하루하루 작은 소녀와 ZERO가 가까워질 때 예기치 않는 순간 문제가 터진다. 프로그램과 자아 사이에 충돌로 혼란스러워하던 ZERO는 작은 소녀와 영진, 그리고 자신의 관계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영진은 자신의 아버지다. 이 작은 소녀도 영진을 아빠라 부른다. 그렇다면 자신과 이 소녀는 형제인가? ZERO는 작은 소녀에게 물었다. 우리는 형제야? 똘똘한 작은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곤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린 친구야! 혼란스러운 안드로이드가 다시 묻는다. 박사님은 나의 아버지인데 너도 박사님을 아빠라고 부르잖아. 그럼 우린 형제잖아? 소녀는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젓는다. 아니! 너는 아빠가 만든 안드로이드! 나는 아빠 진짜 딸! 악의가 없는 소녀의 답에 연구실 밖의 세상을 모르는 안드로이드는 혼란스러웠다. 진짜 딸? 진짜? 그럼 나는 가짜? 나는 안드로이드인데. 뒤죽박죽된 머릿속에 안드로이드는 작게 신음했다. 그래서 작은 소녀의 다음 말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우린 친구인걸? 근데 제로가 형제 하고 싶으면 형제 하자! 대신 내가 누나다?

십 년 전 실험체 T-ZERO의 오작동이 일어난 날의 사상자는 총 15명이었는데 그중 사망자는 단 한 명, 일곱 살 된 작은 여자아이뿐이었다.

영진을 바라보던 소장은 그날의 기억에 눈을 감았다. 모두가 같은 상처를 안고 보냈던 십 년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안드로이드에 자식을 잃은 아비가 미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이견 없이 폐기하는 것으로 하지.”


회의실에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을 깬 것은 소장이었다. 아무도 그 결정에 이견을 낼 수 없었다. 찜찜한 것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핏발선 영진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소장도 괴로웠다. 부디 이대로 이 모든 사태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소장은 소망했다. 십 년 전의 일을 두 번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영진도 그러길 바랄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소장의 마음 한쪽에 자리한 불안감은 십 년이라는 사실에 뿌리내리고 있었다.

십 년. 자그마치 십 년이었다. 영진이 미친 사람처럼 연구에 몰두한 것도. 다른 것도 아닌 제 딸을 죽인 그런 안드로이드를 만들겠다고 매달린 것이. 십 년이 지나서야 제정신이 들었단 말인가. 소장은 자료를 챙기고 있는 영진을 바라봤다.


“자네가 부디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이면 좋겠군.”


다른 이 모두가 나가고 단둘만 남은 회의실의 공기가 무거웠다. 소장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오래전 함께 동고동락하던 그 기억은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문신처럼 머리 한구석에 새겨진 채였다.

영진이 소장을 바라봤다. 그 눈빛이 꼭 십 년 전의 영진의 그것과 같아서 소장은 반갑게 인사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불꽃이 튀는 듯 열정이 가득하고 야망이라곤 없는 투명하던 눈. 영진은 지금 꼭 그런 눈을 하고 있었다.


“제정신이었다면 버티지 못할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영진이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회의실을 나선다. 소장은 한동안 말없이 텅 빈 회의실에 앉아 영진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     *     *



퇴원하여 집에 돌아온 지민은 텅 비어버린 집에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영진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뿐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똑같았다. 그저 영진이 도와줄 마음이 없다는 확인만 받을 뿐이었다.

지민은 하루를 집에 틀어박힌 채 울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무력한 존재임을 실감하는 일만큼 인간에게 절망적인 건 없었다. 지켜주겠다던 약속. 울던 정국의 얼굴. 형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떨리는 목소리.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지민을 괴롭혔다. 더는 몸속에 남은 수분이 없어 눈물이 멈추지 않을까 싶은 순간까지 지민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정말 수분이 떨어졌다고 생각되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은 떴을 땐 제법 시간이 흐른 뒤였다. 밖이 어둑해져 있었다. 이렇게 울고만 있어 봤자 현실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 지민은 이렇게 무력하게 아무것도 해보지도 않은 채 정국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어떡하면 좋지?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민은 물먹은 솜마냥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정국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은 막아야 했다. 어떻게든. 그렇다면 무슨 수로? 그저 월급이나 받던 평범한 회사원일 뿐이었고, 거창한 힘 같은 걸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마저 믿었던 이도 연락이 되지 않는 지금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민은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

생각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 차분히 앉아 정신을 가다듬던 지민은 문득 얼마 전 병실에서 봤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다시 화제로 떠오른 M사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는 꽤 큰 가십거리였는데 안드로이드가 직접 전화를 해 경찰을 불렀다는 사실이 흥미를 끈 모양이었다. 어쩌면 지민은 정국을 구할 방법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민은 정신을 차리고 이전에 정국과의 일상을 찍어놓은 영상이나 사진을 찾아 집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안드로이드와의 사랑은 삼류 소설의 주제밖에 되지 않는 이상성애라고 보는 사회였다. 지금부터 지민이 할 일은 그런 곳 한복판에서 자신이 바로 그 이상성애자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당연히 비난이 따를 것이고 다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정국을 잃는 것보다 무섭진 않았다.

지민은 다음날부터 곧바로 행동을 시작했다. 부나 권력을 가지지 못한 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지민은 포털 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정국과의 사랑을 고백하고, 일상을 보여주며 호소했다. 우리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그저 다른 이들처럼 사랑했을 뿐이라고. 언론에서 글을 주목할 때까지 지민은 포기 않고 글을 써 올렸다. 정국과의 추억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함께 올릴 때면 그때의 생각이 나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지민은 우는 대신 이를 악물었다.

아무도 우리의 사랑을 방해할 권리는 없다.

지민은 수많은 글을 통해 그렇게 말했다. 받아들이는 것은 대중의 몫이었다. 그리고 지민이 글을 올린 지 일주일 째 되는 날 지민과 같은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화제의 중심이었던 M사 안드로이드와 그 구매자의 사랑 이야기는 곧 사회적인 현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해갔다. 이상성애라는 낙인 아래에 숨었던 이들이 하나둘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지민은 편히 자지 못해 충혈된 눈으로 그 모든 흐름을 지켜봤다. 지민이 굴린 작은 눈덩이는 거대한 공이 되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구르고 있었다.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했던 날 지민의 희망대로 연구소 측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가 된 셈이었다.

 


*     *     *


 

“요새 아주 흥미로운 글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연인이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제목부터 굉장히 눈길을 끄는 이 글이 화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이 사건도 여전히 큰 화제죠. M사의 안드로이드. 그 안드로이드의 연인이라고 밝힌 남자가 쓴 글입니다. 일단 함께 보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요새 한창 이슈인 M사 안드로이드의 구매자였자, 연인입니다. 저의 연인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살해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저희는 보통의 연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맹세코 죽어야 할 정도의 범죄를 저지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치명적 결함’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핑계로 살해당해야 합니까? 제 연인이 타 안드로이드와 다른 점은 딱 하나였습니다.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게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됩니까?

 

스튜디오의 화면에 올라왔던 글을 송출했던 화면이 다시 스튜디오를 잡는다. 사회자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오늘 나와주신 분들은 어떻게 보십니까.”

“처음에 저 글만 봤을 때는 약간, 과대망상증 환자. 뭐 이런 거지 않나 싶었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근데 이다음에 올라온 글들이나 또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던 여러 가지를 이제 조합을 해보니 마냥 거짓말은 아닌 것 같거든요.”

“저도 이 의견엔 동의합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분이 그동안 자신의 연인과 찍었던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걸 첨부하면서 더 사실이란 쪽에 여론이 기울어졌죠.”

“그 영상들이 또 있습니다. 함께 보시죠.”


화면이 다시 전환된다. 요리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정국이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건 지민인 듯했다.


― 오늘 저녁은 뭐죠, 셰프님?

― 오늘요? 형 전에 파스타 먹고 싶다면서요.

― 진짜? 맛있겠다.


카메라가 흔들리더니 지민의 얼굴이 등장한다. 지민은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다 정국의 등을 쿡쿡 찔렀다. 정국이 고개를 살짝 돌려 카메라를 바라본다.


― 형 딱 먹고 싶은 걸 제가 이렇게 알아서 준비하고. 어때요. 좀 기특합니까?

― 그럼, 완전 기특하지. 우리 정국이 언제 이렇게 컸지?

― 전 원래 컸어요.


둘은 웃음이 터져 서로를 마주 보고 웃는다. 지민이 여전히 웃음기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 뭐가…뭐가 그렇게 커?

― …몰라서 물어요?


정국이 눈썹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장난스럽게 대답한다. 다시 웃음이 터진다. 화면이 까맣게 변하고 다른 영상이 나온다.


― 정국이, 자?


잠든 정국의 옆자리에 앉은 지민이 묻는다. 정국은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했다.


―우리 정국이. 뭘 먹고 이렇게 잘났지?


잠든 정국을 앞에 두고 지민이 웃으며 말한다. 코도 잘생겼고 눈도 잘생겼고 입술도…. 너무 예뻐. 그러면서 아주 소중한 것을 만지듯 조심스럽게 정국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 손길이 너무나도 애틋하여 보는 이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였다. 정국의 말랑한 볼을 만지작거리는데 정국이 눈을 뜬다.


― 뭐 먹고 잘났냐고요?

― …다 듣고 있었어?

― 네.

― 근데 왜 자는 척했어?

― 기분 좋아서요. 형이 그렇게 말하는 거.


뭐야. 지민이 부끄러운 듯 정국의 볼을 꽉 잡아 눌렀다. 정국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접혀 호선을 그렸다.


― 뭐 먹고 잘났냐면요….

― 그래, 뭐 먹고 잘났는데?

― 뭐긴, 형이지.


순식간에 카메라가 뒤집힌다. 천장만 보이는 화면에서 쪽쪽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암전. 그 뒤에 공개된 영상도 비슷했다. 정국이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모른 상태에서 본다면 그저 평범한 연인의 일상을 찍은 비디오들이었다. 사진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가 보기에도 정국은 평범한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다시 화면은 스튜디오를 잡는다.


“저는 처음에 보고 그냥 정말 예전 연인과 찍은 걸 올린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안드로이드라고 믿을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 저 둘을 봤다는 목격자들 말도 하나같이 일치하거든요. 그냥 사람인 줄 알았다고.”


실제로 지민이 인터넷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둘을 봤던 사람들의 소소한 목격담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모든 글의 공통점은 “둘은 정말 다정한 연인 같았다.”와 “안드로이드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인해서 또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 벌어지게 됩니다. 바로 이 이슈의 주인공들처럼 나도 내 안드로이드와 연인 사이다, 라고 고백을 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평소에는 이상 성애로 취급받았거든요. 안드로이드와의 사랑이란 게. 그런데 이제 이 글들을 보고 한두 명씩 용기를 얻게 된 거 같아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안드로이드와 정서적으로 큰 교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되었습니다. 하나의 큰 사회적인 현상이 된 셈이죠.”


중간에서 정리를 한 번 한 사회자가 다른 패널에게 물었다.


“인터넷의 반응은 좀 어떻습니까.”

“반반입니다. 좋아할 수도 있다는 의견과 말도 안 된다는 그런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나뉘어서 대립하고 있는데요. 원래 굉장히 부정적이었어요. 안드로이드와 연애? 어디 가서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런 거였는데. 이번 일은 이상하리만큼 우호적인 반응이 컸습니다. 아마도 공개된 영상이나 사진 속의 두 사람이 정말 다정한 연인 그 자체라서. 그런 영향이 조금 있지 않나, 싶습니다.”

“청원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거든요.”

“청원 운동이요.”

“폐기처분 하지 말아 달라고. 근데 생각보다 참여자 수가 정말 많아요.”


화면에 폐기처분을 철회해달라는 청원 창이 나타났다. 아, 참여자 수가 정말 많군요. 사회자가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굉장히 의미하는 바가 큰 사건이지 않나, 싶습니다. 슬슬 클로징을 준비하는 듯했다.

지민은 초조하게 손톱을 씹으며 방송을 보다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전부터 정국에 대해 묘한 호의를 가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맞았다. 파급력도 큰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한 번 다루고 나면 여론은 순식간에 기울 것이다.

지민의 생각보다도 지민이 떠오른 방법은 반응이 뜨거웠다. 폐기처분 철회 청원이 열릴 것이라고는 솔직히 지민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대로라면 정말 정국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름 정도의 길고도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이렇게 해서 정국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고생해도 좋았다.

 


*     *     *



고지가 코앞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그런데 그 순간 발을 삐끗하여 아래로 굴러떨어진다면 기분이 어떠하겠는가. 지민은 리모컨을 쥔 손을 파르르 떨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언론들이 앞다투어 안드로이드와 관련한 부정적인 내용의 방송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오작동을 일으킨 안드로이드가 저지른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과 안드로이드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일종의 편집증이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담은 방송들이 마구잡이로 방송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지민을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영진과 함께 조명된 십 년 전 안드로이드 오작동에 관한 방송이었다. 한 시간짜리 특별 편성으로 구성된 해당 방송은 십 년 전 M사의 연구소에서 있었던 한 안드로이드의 오작동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영진이 있었다.


― 박사님에게 십 년 전의 사고는 어떤 의미인가요.

― 어떤 의미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모든 것을 잃은 날인데.

― 박사님께서 십 년 전에 만든 안드로이드는 어떤 안드로이드였죠?

― 정확히는 제 팀이 함께 만든 안드로이드죠. …그건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안드로이드였습니다. 성공했다면…업계 최초였겠죠.

― 그렇다면 왜 실패하게 된 겁니까? 십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오작동입니다. 14명의 연구원이 다치고 한 명의 아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 아아….

― 그리고 그 아이는 제 딸입니다.


지민은 그 방송을 끝까지 볼 수 없었다. 안드로이드가 자식 같다던 영진과 안드로이드의 손에 진짜 자식을 잃었다는 영진의 모습이 겹쳐져 지민을 괴롭게 했다. 정국을, 안드로이드를 자식이라 말하던 영진의 얼굴에선 분명 진심이 느껴졌고 심지어 따뜻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는데. 수많은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던 지민이 처음으로 흔들리던 순간이었다. 지민은 영진을 동정해야 하는지 원망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가 정국에게 보인 애정은 분명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말 그가 딸을 잃었다면…. 모은 것이 혼란스러웠다.

흔들리는 것은 비단 지민만이 아니었다. 직접 만든 안드로이드의 손에 딸을 잃은 박사의 이야기는 지민의 이야기보다 더 많은 동정을 불러왔다.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진짜 딸을 잃은 박사와 안드로이드인 연인이 폐기될지도 모른다는 남자의 이야기는. 불 보듯 뻔한 결과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쪽으로 힘을 실어줬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안드로이드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에 휩쓸렸다. 지민을 응원하던 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상을 두고 팽팽하게 이어지던 줄다리기는 어느 한쪽이 굴러떨어지면 반대쪽 의견이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안드로이드와 안드로이드와의 정서적인 교감에 있어서 우호적이던 여론이 결국은 안드로이드는 그저 안드로이드일 뿐 어떻게 사람과 같을 수 있냐는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버리기 시작했다. 대다수 사람에겐 그저 흥밋거리일 뿐이니 순식간에 의견이 기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민이 어떻게 뭐라도 더 해볼 새도 없었다.

밀려드는 청원과 요동치는 여론 때문에 폐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난감해하던 연구소 측은 여론이 혼란스럽게 뒤바뀐 이 시점을 이용해 정국의 폐기를 당장 오늘 진행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심지어 이례 없는 공개 방송까지 진행하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폐기까지 시간이 있을 테니 그동안 어떻게라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청원은 여전히 유효하니까. 그리 생각하며 초조하게 회견을 지켜보던 지민은 회견을 보자마자 앞뒤 잴 것 없이 회견장으로 향했다. 곧이어 바로 폐기를 중계할 것이라 했다. 자꾸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몇 번이고 뿌옇게 물들었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눈가를 훔치며 지민은 달렸다. 폐부 끝까지 공기가 들어차 폐가 찢어질 듯 아팠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깟 고통이 정국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을 막을 순 없었다.

회견장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변에서 간간이 지민을 알아보곤 저들끼리 수군거렸지만 지금 지민에겐 주변 상황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지민은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갔다. 스크린에 정국의 모습이 보였다. 지민을 알아본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길을 터주었다.

정국은 지나치게 담대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있었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모니터 속 정국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모습에 손가락질하는 이도 있었고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아무래도 좋았다. 차라리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받을지언정 정국을 잃고 싶지 않았다.

곧 하얀 가운을 입은 남자들이 정국에게로 다가간다. 아무리 안드로이드라지만 사람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 외관을 가진 이를 공개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끔찍한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연구소 측은 그런 비판도 예상했다는 듯 발표를 마치자마자 바로 속전속결로 폐기를 진행하였다.

말간 정국의 얼굴이 카메라를 향해 웃는다. 지민은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염없이 화면을 쓸고 있는데 그 안쓰러운 모습을 보다 못한 주변인이 지민의 손에 손수건을 챙겨주었다. 곧 정각이 된다. 정각이 되면 정국은 안드로이드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메모리칩이 뽑혀 나갈 것이다. 정국은 여전히 말갛게 웃는 얼굴이었다. 꼭 처음 정국을 보던 날 같았다.

지민은 눈가를 닦아내며 화면 속의 정국을 바라봤다. 정국은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었는데 지민은 꼭 정국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형.’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울지 마요.’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정국을 고정한 후 천천히 목 뒤로 손을 뻗는다. 지민이 눈을 질끈 감았다.


‘먼저 집에 가 있어요.’


화면을 응시하던 정국의 눈이 감긴다. 전원이 나간 것처럼 그렇게, 몸도 무너져 내린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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